[시론]정재철/세제개혁안 빈틈 보인다

  • 입력 1999년 8월 18일 19시 17분


국민의 정부가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그동안 세제 개혁을 미루어 의아했으나 뒤늦게나마 개혁 의지를 천명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국민경제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국민생활면에서 세제만큼 중요한 분야도 없다.

세제는 그동안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경제사회의 상황 변화에 대응해 수없이 개편 또는 개혁됐다. 하지만 매번 성장에만 역점을 둔 것이 사실이다. 형평(衡平)과 효율(效率)의 조세기능중 효율만을 너무 중시했고 그로 인해 철저하게 대중과세에 의존함으로써 형평이 희생된 것이다.

▼뚜렷한 청사진 없어▼

그렇다고 해서 형평에만 문제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재원마련을 위한 세수 확보에만 급급한 나머지 효율 측면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더군다나 경제위기로 계층간에 소득과 부의 격차가 더욱 벌어져 형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더이상 세제 개혁을 미룰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세제개혁안, 현행 세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개혁방향에 관해 조세제도의 중요한 준거기준인 형평(공평)과 효율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정부가 내놓은 세제개혁안은 형평의 제고에는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나 조세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내버려둬 과연 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세제를 제대로 개혁하자면 대전제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해 땜질식 개혁이 될 우려가 있다. 앞으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늘게 되고 그에 따라 조세부담률을 얼마로 늘려야 하는데 이를 국민 계층간에 이렇게 부담시켜 형평을 개선하겠다는 식의 접근이 결여돼 있다.

형평의 제고를 위해 상속 증여세 최고세율을 현행 45%에서 50%로 높이고 상속 증여과세를 크게 강화하려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50%라는 수준은 재벌의 부와 소득집중 그리고 부의 세습문제가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낮다. 일본(70%) 대만(60%) 미국(55%)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다. 특히 한국의 세제는 서민부담을 가중시키는 간접세 위주의 역진적(逆進的) 조세체계로서 형평의 제고를 위해서는 고소득층의 조세부담 강화가 불가피하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도 명실상부한 종합과세의 실시와 형평의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나 2002년으로 또 미루어졌다. 언제까지 자본가와 부유층만을 우대하는 세제를 고집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효율과 관련해서도 현행 세제는 허다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손을 쓸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여 과연 개혁다운 개혁이 이루어질지 걱정된다.

▼형평-효율 다 갖춰야▼

특히 대표적인 비효율의 표본이라 할 목적세제에 대해 개혁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목적세는 심하게 말하면 정부의 예산편성 권한의 포기를 뜻한다. 또한 예산편성의 통일성을 저해하고 재정의 경직성과 비효율을 부르는 조세이다. 목적세는 국세와 지방세를 포함해 6개나 될만큼 유난히 많다. 목적세란 편익에 따라 조세를 부담시키는 조세인데 현행 목적세는 교통세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취지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 때문에 다른 나라들은 목적세를 거의 채택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특정부처의 예산만 확보해주는 비효율적인 목적세를 없애야 한다.

비효율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조세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한 것도 비효율을 만든다. 부가가치세와 전화세는 비슷한 성격의 조세를 달리 부과해 번거롭다. 토지관련 세제는 같은 대상에 중복 과세한다. 이 모두 개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전화세는 차라리 폐지해 부가가치세에 통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중앙정부의 지방재정 조정제도도 지방교부세 지방양여금 보조금 등으로 다기화(多岐化)해 번거롭고 중앙부처의 간섭과 개입이 지나쳐 재정재원의 효율적 이용이 어렵다. 어차피 지방정부에 줄 돈이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지방교부세율을 대폭 상향조정하든지 국세의 지방세 이양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정부는 왜곡될대로 왜곡된 현행세제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개혁해 형평과 효율을 높여야 할 것이다. 미봉은 안된다.

정재철<서울시립대 교수·재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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