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천용택 「길」

  • 입력 1999년 8월 18일 18시 52분


실낱같이 가는 샛길로 샛길로 가서

마지막 샛길 끝에

말이라도 걸면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슬픈 초가 한 채

아무도 가지 않고

이따금 내가 가다가 해져서

길 잃고 길 없이

돌아온다

―시집 ‘누이야 날이 저문다’(열림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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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국도를 지나다보면, 혹은 시골 마을의 고샅을 걷다보면 ‘말이라도 걸면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빈 집들이 누군가의 영혼처럼 서 있다. 누가 살았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솥이 걸려 있던 부엌, 빨래가 널리곤 했을 마당을 시퍼렇게 뒤덮은 잡초들. 혹, 그 집의 우물은 사람들이 다 떠난 줄도 모르고 아직도 물을 찰랑찰랑 간직하고 있진 않은지. 그 물길 어딘가에 우리가 잃어버린 길이 있는건 아닌지.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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