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훈장은 필요없어요」

  • 입력 1999년 8월 16일 18시 40분


지금도 떠오른다. 일곱살 어린 딸의 영정을 하염없이 쓰다듬는 젊은 어머니. 행여 보드라운 살결이 만져질까, 따스한 숨결이라도 전해질까, 차마 보낼 수는 없어, 이렇게 떠나보내고는 남은 생 살아갈 기력이 없어, 너무 여리고 가여워 가슴에조차 묻을 수 없어…. 세상 어느 아픔이 그보다 더할 것인가. 그보다 더 간절한 원망(願望)의 손짓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을까. 또 한 어머니는 이렇게 통곡했지. “얼마나 뜨거웠을까. 얼마나 엄마를 불렀을까.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모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군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 천사같은 어린 생명을 잃은 부모와 모든 유가족들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악몽일 그 참혹한 사건이 있은지도 한달 반. 어느새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들의 아픔을 잊어간다.

▽예전에도 그랬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때도, 삼풍백화점 참사때도 그때뿐이었다. 다른 대형사고때도 다를 건 없었다. 돈에만 눈이 어두운 사업주와 뇌물로 얽힌 공무원들, 엉터리 공사 하고 얼렁뚱땅 감리하고, 눈속임 안전시설에 점검도 대충대충, 그러다가 큰 변을 당하고 나면 업자와 공무원 몇명 잡아넣고 유가족에겐 보상금에 위로금 얼마 쥐어주고,그렇게 끝나기 일쑤였지 않은가.

▽더는 그럴 수 없어요. 씨랜드 화재로 일곱살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선언’했다. 여자필드하키 국가대표를 지낸 김순덕씨(33). 그는 얼마전 올림픽 등에서 메달을 딴 공로로 그동안 정부로부터 받았던 여러 훈장을 몽땅 청와대민원실로 돌려보냈다. “아들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서 받은 훈장이 무슨 소용이람” 그는 머지않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단다. 위정자들이여. 이 어찌 부끄럽지 않은가.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