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주현/계좌추적에 성역 없어야

  • 입력 1999년 8월 11일 18시 33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가 또 민생은 뒤로 한 채 정쟁으로 치닫고 있다. 국회를 통하지 않고는 민생법안이 마련될 길이 없으니, 법안처리회기와 정쟁회기를 구별하여 정해진 날짜에만 정치적 사안을 다룰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싸움에도 구별이 있다. 크게 보아서 득이 되는 싸움이 있고, 남에게 피해만 입히는 싸움도 있다. 일반적으로 힘있는 기관들끼리 싸우면서 상대방의 흠을 제대로 드러내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싸움이 아닐 수 없다.

▼政爭빌미 안될 말▼

검찰과 언론이, 사법부와 행정부가 서로 견제하고, 법원과 검찰이, 검찰과 경찰이 서로를 감시할 때, 그 싸움이 격렬해 질수록 부정과 비리는 낱낱이 드러난다. 권언유착이니 정치검찰이니 권력의 시녀이니 하는 구시대의 망령들이 사라질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야당이 불법모금에 대한 계좌추적에 대하여 ‘여당의 대선자금도 조사하라’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야당탄압이니 범위를 넘어섰느니 하는 수세적이며 발목잡기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의 관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그 싸움으로 민생현안이 내팽개쳐지는 상황이 되면 전형적인 ‘남에게 피해만 입히는 싸움’이 되고 만다.

애초에 계좌추적을 회피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본시 구린 데가 있고 힘 있는 자들이 베일에 가려지기를 바라는 법이다. 금융실명법에 규정된 법원의 제출명령이나 영장에 의한 계좌추적, 국세청에서의 세무조사자료를 얻기 위한 경우와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 등의 계좌추적은 활성화돼야 한다. 감사원의 계좌추적권도 필요한 범위내에서 부활해야 하며 금융실명법 부칙에서 국세청의 세무조사자료를 얻기 위한 계좌추적권을 제한한 것도 원상태로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과연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어느 정도로 보호되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긴다. 공산주의는 생산부문이나 개인의 정신세계에까지 통제의 칼날을 들이대다 결국 실패하였다. 한편 미국 일본의 자유주의적 경향은 빈부격차나 사회제반 문제해결에 무력하다고 판정됐다. 그에 비해 서구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은 나름대로 선진적이라고 평가된다. 그 이유는 개인적이고 정신적 측면은 ‘자유주의적 불간섭의 영역’으로 보장하고, 사회관련 부분과 물질적 측면은 ‘공동체의 유지’라는 목적아래 상당한 정도의 조율과 규제를 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잘 조절한데서 기인한다.

우리의 헌법정신을 보더라도 재산권은 토지수용에서 보듯 상당한 정도의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자유권 특히 정신적 자유권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이는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합법적 절차 따르길▼

국세청은 모든 부동산과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전산화하여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금융자산만이 프라이버시의 영역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상당한 정도의 규제라 할 수 있는 금융실명법이 국민의 성원하에 만들어지게 된 취지도, 금융거래를 실명에 의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자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하여 부정부패를 없애고 탈세를 방지하자는데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면 누구라도 범죄의 의혹이 있을 때 법원의 영장에 의하여 또는 과세와 관련하여 계좌가 공개되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자금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계좌만은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다고 우기는 것은 말도 안된다.

물론 계좌추적권한을 행사하는 검찰, 법원, 국세청 등이 남용하지 않도록, 또한 표적사정이라는 오해가 없도록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필요한 한도내에서, 성역이 없이 권한을 행사하여야 할 것이다. 권한남용시비로 인하여 계좌추적권 자체를 없애자는 여론이 생긴다면 그것은 사회전체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진 정보든 금융기관이 가진 정보든 지금보다 훨씬 더 열리고 공개되지 않으면 투명하고 맑은 사회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렇게 더 열리고 공개되는 방향으로 싸움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만의 싸움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부부싸움한다고 아이들 밥을 굶겨서는 아니되듯, 싸우더라도 자신이 해야할 일은 하면서 싸워야 한다.

박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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