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정치인의 말과 실수

  • 입력 1999년 7월 2일 19시 22분


말이라는 단어의 뿌리는 동양이건 서양이건 모두 입과 혀에 닿아 있다. 원래 언어의 언(言)은 생각나는 바를 입에 담는 것, 어(語)는 말에 대해 답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영어의 ‘랭귀지’도 거슬러 올라가면 혀를 뜻하는 라틴어(lingua)에서 나왔다. 혀가 빗나가거나 언어를 통제하는 뇌의 작용이 일시 흐트러져 생기는 실수는 늘 구설(혀)을 타게 된다.

▽‘망신하려면 아버지 이름 석자도 안나온다’는 속담이 있다. 그 역시 혀와 대뇌 작용의 순간적인 착오를 인정하는 조상들의 경험담일 게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군부대를 방문해 몇자 격려사를 적으며 ‘자신감’을 ‘自身감’이라고 적었다해서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준비된 원고의 ‘개전(改悛)의 정’을 ‘개준의 정’이라 했다가 입에 오른 적이 있다.

▽정치인들의 착각 오발은 숱하게 많다. 이재민(罹災民)을 나재민이라고 읽은 이는 현재 여당의 고위직에 있고, 의원 나이가 40세가 넘은 것을 가리켜 보좌관이 적어준 ‘불혹(不惑)의 나이’를 ‘불감의 나이’라고 읽은 이도 있다. 영수(領袖)회담을 영추회담, 추도사(追悼辭)를 추탁사, 수출특별자금을 의미하는 수특(輸特)자금을 유특자금이라고 한 분도 있다. 재치있고 유머러스 하다고 하는 말이 ‘그분 참 루머가 대단하더라’라고 한 전직 대통령도 있다.

▽그런 오발에는 착각도 있고 실제로 상식부족이나 연구미흡도 있다. 우리의 걱정은 바로 후자다. 국회 상임위 질의에서 비서가 써준 무슨 APT를 ‘에이 피 티 아파트’라고 읽거나, 이 강의 ○PPM오염과 저 강의 □PPM을 산술적으로 합쳐 지독한 오염이라고 호통치는 것 등은 난센스다. 한번 실수하면 모든 게 그릇된 줄 안다(一行有失 百行俱傾)라는 말도 있다. 정치인의 언어는 그래서 더 주목거리다.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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