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55)

  • 입력 1999년 6월 29일 18시 43분


나는 곧 조사실로 끌려갔는데 사복은 다른 이에게 인계를 했다. 그리고는 내가 잘 보이는 곳에 떨어져 앉았다. 체격이 땅딸막하고 머리는 짧고 국방색 작업복을 입은 좀 더 나이 들어보이는 사내가 서류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름은?

장명구입니다.

허, 이새끼 봐.

하면서 마주 앉아 바라보던 사복 차림이 벌떡 일어나더니 의자에 앉은 나를 발길로 내질렀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벌렁 자빠졌다.

너 아직두 오리발 내밀래?

작업복이 넘어진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사복에게 말했다.

야 증말 피곤해 못살겠다. 그 새끼 데려와.

사복이 나갔고 작업복은 담배 한 대를 꺼내어 아주 찬찬히 의자 팔걸이에다 두드려 다지고나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야, 너 왜 그러니? 우리가 너 하나쯤 파악하지 못할 줄 아냐?

문이 열렸고 역시 수갑을 찬 최동우네 인천 동아리의 공원이 들어섰고 뒤에 사복이 따라 들어왔다. 사복은 먼저 공원의 뺨을 한차례 후려치고나서 물었다.

얀마 이 자식이 누구냐?

주민증의 임자는 나를 한번만 힐끗 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사복이 다시 구두 끝으로 그의 앞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까 얘기했잖아 임마. 최동우 소개루 주민증 내줬다구. 이 새끼 누구냐니까?

오…현우…입니다.

작업복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소리 하기가 그렇게 어렵냐. 이 빨갱이 새끼들. 이 새끼 말야 우선 공무집행 방해에다 공문서 위조루 엮어.

주민증의 주인 장명구가 끌려나간 뒤에 작업복은 잠깐동안 침묵을 지키며 담배만 피웠다. 그는 다시 나를 향하여 돌아앉더니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현우, 넌 인제 끝났다. 너는 우리 소관이 아니야. 곧 다른데루 넘겨질 거야. 그러니까 서루 고생하지말구 도망 경위만 말하면 되는 거야. 이미 너희들 껀은 그림이 다 끝났잖아. 넌 주범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묵비권이냐? 그런 건 간첩한테는 해당이 안되는 권리지. 우린 시간이 없다구. 너의 체포 경위를 쓰려면 도망 다닌 경로를 알아야 하고 그래야 타기관에 신병인계를 할 거 아니냐. 맨 손으로 널 넘길 수는 없다 그거야. 우리두 체면이 있지. 자, 묻는 말에 대답해. 팔십 년 오월 이후 어디 있었나?

그렇게 나의 사십오 일 동안의 연옥이 시작 되었다. 사흘 밤을 서에서 꼬박 새우고는 감색 정장을 한 말쑥한 차림의 남자 세 사람이 나를 인수받으러 왔고 그들은 경찰서 조사실에 들어서면서 나 같은 존재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형사들이 부동자세로 일어나 뭔가 소리를 지르며 맨 머리에 경례를 올려 붙였다. 앞장섰던 중년 사내는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로 턱짓만 하고나서 작업복에게 물었다.

당신이 실장이야?

옛 그렇슴다.

우린 남산에서 왔어요. 얘가 오현우야?

그는 그제서야 조사실 구석 의자에 앉은 나를 무슨 이삿짐이라도 되는 듯이 눈대중으로 관찰하는 것 같았다.

관계서류 다 내놓고…그동안 뭔가 했겠지요?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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