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인길/강봉균 경제팀의 책무

  • 입력 1999년 5월 26일 19시 37분


새로 짜여진 강봉균(康奉均)경제팀은 개각발표와 함께 전례없이 요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짐작된다. 일감(一感)으론 교체의 시점이 참 절묘했다. 기자의 기억으론 최근 10년사이 물러나는 장관이 기분좋게 손을 흔들고 다음 새 팀이 경제의 호순환 무드 속에 등장한 예가 없었다.

전문성도 큰 강점이다. 위기관리의 뒤끝이라 경제 전분야에 과제가 산적하고 아마추어들의 빈발하는 시행착오와 어설픈 국정운용에 신물이 나있던 터라 프로에 대한 향수가 더없이 컸다. 허전한 구석에 대한 공복감(空腹感)이 이들에 대한 기대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제팀의 트레이드 마크는 뭐니뭐니 해도 깨끗한 이미지다. 기자가 오랫동안 만나본 바로는 강봉균 진념 이헌재 전윤철 이기호 이들 다섯 사람은 탐욕 출세욕과는 비교적 거리가 멀다. 뇌물이 횡행하는 한국풍토에서 30여년을 넘게 관료생활을 하며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관중의 박수는 한순간 야유로 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강봉균 경제팀이 나중에 정말 ‘잘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지금부터 단기승부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장관들은 너나 할것없이 실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경제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는 헌 틀을 깨부수고 새 틀을 만드는 작업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대한 청사진. 무엇이 어찌 될지 미래에 대한 그림이 없다. 이를테면 구조조정만 해도 그렇다. 은행의 부실을 탕감하기 위해 재정자금 64조원이 투입되고 있지만 그후 은행의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재벌개혁도 마찬가지다. 1년이상을 끌어온 빅딜의 실체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고 부채비율 200%를 맞추고 난 다음의 재벌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대기업이 큰 사업을 벌여야 하는데 축소일변도로 거품빼기에만 열중할뿐 재도약의 유인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없다.

진짜 재벌개혁을 하려면 재벌의 속성을 제대로 아는 것도 이제 중요하다. 최근에 잇달아 터진 대규모 시세조종사건은 이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에 오너대주주들은 기업에서 몰래 돈을 꿔다 증자지분을 반복적으로 따먹으면서 천문학적인 부를 불려왔다. 지금은 더 지능적이다. 아예 계열사를 동원해 증권시장에서 주가를 끌어올린 다음 보유주식을 처분해 막대한 차익을 챙기고 그 돈으로 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또 따먹는다. 꿩먹고 알먹는 장사다. 지배구조혁신이 진짜 재벌개혁의 요체라면 이런 행위를 못하게 하는 데서 재벌개혁은 출발해야 한다.

새 경제팀이 또 특별하게 신경써야 할 것은 ‘말’이다. 한마디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장관쯤 되면 누구 할 것없이 말을 아껴야 한다. 요즘 경제상황을 놓고도 이 장관 저 장관이 불쑥불쑥 한마디씩 하는 통에 시장(市場)이 천당과 지옥으로 널뛰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집행기관과 감독기관도 가급적 전면에 안나서는 것이 좋다. 소리없이 조용하게 일처리를 하라는 이야기다. 감독기관이 은행과 기업의 생사를 좌지우지하고 은행을 외국인에게 파는 교섭까지 담당하며 설치는 것은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강봉균 경제팀의 첫 시험대는 내년4월 총선이다. 경제장관들이 정치권의 욕을 먹지 않으려고 타협적인 정책태도를 보인다면 경제운용과 개혁의 성과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은 입각을 하고 승진을 한 직후라서 그런지 말들이 거창하고 모두가 싱글벙글 들떠 있는데 목이 잘린 부하직원을 생각해서라도 좀 자제해주기 바란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따위의 충성경쟁식 발언을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산적한 현안을 점검하고 정신을 차려서 각론적 청사진을 내놔야한다.

이인길<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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