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도종환/카네이션 달아도 괜찮은 교사일까

  • 입력 1999년 5월 13일 19시 34분


나뭇잎은 오월 초순의 빛깔이 가장 곱다. 막 자라 오르는 연둣빛이나 연녹색의 잎들이 모여 이룬 숲의 빛깔은 어떤 화가가 그린 그림보다 아름답다. 새나 짐승의 새끼들도 어린 티를 벗고 있을 때는 다 귀엽고, 그건 만개하기 전의 꽃들도 마찬가지다. 진녹색의 울창한 숲을 이룬 때보다 오월 초순의 나뭇잎 빛깔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때묻지 않은 신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오월 초순의 나뭇잎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 해가 다르게 어린 티를 벗으며 자라나는 모습이 그렇고, 말하고 웃음짓고 고민하고 뛰노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싱그럽고 신선한 아름다움만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저것들 때문에 내가 살지 하는 생각이 드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하고도 교단에 서 있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 말 한마디 때문에 처진 어깨가 다시 가뿐해지는가 하면 바로 그 말 한마디로 인해 교단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다. 오랫동안 교단에 서서 만나온 아이들에 대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선생님들일수록 요즘 아이들을 다루기 힘들어 한다.

너무나 달라져 있다고 하는 말을 많이 한다. 문화가 다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르고 아이들 그 자체가 다르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동의를 하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한 해가 멀다 하고 달라지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인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하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선생은 법고창신(法古創新)해야 한다고 했다. “옛 것을 본받는 사람은 묵은 틀에 빠지는 것이 탈이고, 새 것을 만드는 사람은 상도(常道)에 어긋나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원칙을 지켜나가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나날이 새로워지려고 애를 쓰되 근본을 지켜나가고 있는가. 교사로서 그런 반성을 하게 된다.

나 하나를 추단하기도 힘겨워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며 냉소하거나 남을 가르치는 자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보다는 편하게 무책임한 자리로 옮겨가 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슬기로운 교사는 도를 듣고 그대로 하고, 괜찮은 교사는 반신반의하며, 어리석은 교사는 비웃는다. 그가 비웃지 않으면 도가 아니다”라고 노자(老子)는 말했는데 나는 지금 가르침의 도를 들고 어떤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슬기로운 교사는 자신의 힘을 부리려 하기 보다는 본보기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 똑바로 나아가되 융통성이 있다. 밝되 눈부시지 않다”고 했는데 나는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어도 괜찮을 만큼 본보기가 되어 있는가. 아이들에게 똑바로 걸어가는 모습과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는가. 스승은 길을 묻는 아이들에게 밝은 빛으로 있어 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인가.

아니 우리 모두는 선생을 그런 자리에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일까.

나는 선생에게 임금과 어버이 같은 권위나 존경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회의 허명(虛名)을 버린 지 오래다. 교사인 나 스스로부터도 그런 허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말만 화려한 가짜 존경심을 앞에 놓아두고 뒤돌아서면서 코웃음을 치는 사회적 대우를 받으며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걸어가는 교사의 모습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아이들과 함께 갈 수가 없다.

학생들과 함께 가되 억지로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교사,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되 더 나은 모습을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쓰는 교사, 뒤에 서서 다독이며 가되 학생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느끼게 하는 교사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변화하는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그들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고민하는 새로운 교사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승의 날을 맞으면서.

도종환(진천 덕산중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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