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92)

  • 입력 1999년 4월 16일 19시 58분


형님들, 참말로 답답하요. 나가 머랍디여? 인자 삿삿이 뒤질 거인디 싸게 옮기라고 말했소안.

차일피일 하다가 이렇게 되었다.

안되것소. 인자는 총비상이오. 시방이 시월인께 두 달만 서루 찢어집시다.

건이의 의견에 동우는 고개를 저었다.

두 달은 너무 길고…. 한 달쯤 휴식 기간을 갖자. 새해부터는 조직 가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너는 어떡 할래?

동우가 내게 물었지만 갑자기 어디로 갈 것인지 막연할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너는…?

지방으루 내려갈까 한다.

연락은 되겠지.

물론이지. 일주일에 한번씩 건이 앞으로 안전 신고를 하겠어.

나두 생각해 둔 데가 있다.

내가 먼저 호주머니를 뒤져서 지폐를 꺼냈다.

자아, 이 자리에서 우리 정산하자. 나한테 지금… 오십만원이 있군.

동우도 바지 호주머니와 상의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다탁 위에 올려 놓았다.

나는… 사십만원, 건이 너두 좀 내놔 봐라.

어 나는 시방 원사 사갈라고 갖구 나온 돈 밖에 웁는디. 절반만 냅시다.

모두 합하니까 그래도 백 이십 만원이나 되었고 동우가 말했다.

여기서 공금으로 비상금을 떼놓자. 후원자들이 모아준 성금을 흥청망청 쓸 수는 없잖아. 우리는 절반이면 돼.

먼 소리요, 비상금은 우리 편직공장 동아리들이 준비를 할팅게 형님들이 절반씩 노나갖고 가슈.

나는 모아 놓은 돈에서 오십 만원을 떼어 문건이 든 가방과 함께 건이에게 내밀었다.

우리는 각자 일해서 먹구 살거야. 내달에 소집 활동을 하려면 비용이 들거다.

허허어, 일분만에 이자가 삼십 만원이나 붙어부렀네.

동우가 먼저 일어나며 내 어깨를 쳤다.

자, 헤어지자. 나 먼저 간다.

서로의 행선지는 묻지 않았다. 먼저 나간 동우와 간격을 두노라고 나는 잠깐 동안 건이와 마주앉아 있었다.

주문은 잘 들어오니?

일손이 딸릴 정도로 바쁘요. 재미도 있고.

거기 방두 있냐?

방 두 개 짜리 월세로 들었는디 산동네서 젤로 큰 집이오. 방 한나는 나허구 정자 혜순이 셋이서 자구 먹구 하고요. 마루 하구 작은 방에다 요꼬 기를 놨는디 지낼만하요. 헌디 어디쯤 잠수할라우?

서울 근처….

형님은 주초에 신고를 해주쇼. 이름 한나 남기고 가슈.

그래, 그전에 쓰던대루 김전우다. 나두 간다.

나는 건이를 다방에 남겨 두고 시장으로 나섰다. 이른 아침 나절은 지나고 어중간한 시간이라 점포 앞은 한산했다.

나는 안양으로 나갈 셈이었다. 도망자 수칙은 오래전 유럽에서의 경험들을 모은 소책자에서 익힌 요점들이 도시에서 매우 유용했다.

남수를 도와 주고 봉한이의 은신을 지원하고 있는 권형이가 미군 부대에서 나온 외서를 파는 노점상에서 발견해서 열흘 동안 번역한 소책자였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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