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왜 달리나

  • 입력 1999년 3월 21일 19시 58분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신바람나게 달리는 가장의 모습은 어제의 ‘고개숙인 아빠’가 아니었다. 직장 단위로 참가한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끌어주며 진한 동료애를 과시했다. 얼마만에 되찾은 밝은 표정들인가.

어제 경주에서 열린 동아마라톤 마스터스대회는 오랜만에 우리 사회에 생기가 도는 모습을 보여준 보통사람들의 잔치였다.

▽마라톤은 힘들고 지루한 운동이다. 다른 스포츠처럼 극적인 재미가 없다. 마라토너들은 레이스 도중 수없이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런데도 요즘 달리기가 대유행이다. 동아마라톤 마스터스대회에는 94년 첫 행사에 1백74명이 참가했으나 지난해 6천9백명, 올해 1만1천명으로 폭발적으로 참가자 수가 늘어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왜 ‘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마스터스대회는 1,2위를 가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 완주를 했느냐 못했느냐가 중요하다. 승자나 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86년 뉴욕마라톤에서는 월남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참전용사 밥 윌랜드가 4일 하고도 2시간여가 걸려 코스를 완주했다. 두 손으로 몸을 끌어 마라톤을 마친 그는 “내게 중요한 것은 어느 지점에서 경기를 끝내느냐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어느샌가 무한경쟁의 시대에 내몰리고 말았다. 승자에게만 모든 영예가 돌아가는 게임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패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마스터스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런 ‘상실의 시대’에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헤쳐나갈 의지를 새롭게 했다. 우리 사회도 마스터스대회처럼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제삼의 길’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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