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코소보 소녀의 비극

  • 입력 1999년 3월 10일 19시 24분


언제 나치에게 체포돼 유태인수용소로 보내질지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 쓴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10대 초반 소녀의 전쟁과 인간에 대한 성숙한 통찰력이 독자를 감동시킨다.

10대 소녀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이 일기는 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지, 인간이 심성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해준다.

▽전쟁으로 도시는 물론이고 인간 자체가 파괴되는 현장에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착하다는 것을 믿는다’는 대목에 이르면 안네의 순수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하루도 총성이 그치지 않는 코소보 전장의 현장에서 보내온 한 알바니아계 소녀의 E메일이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 버금가는 감동을 세계에 안겨주고 있어 화제다.

▽CNN방송보도를 통해 국내에도 알려진 코소보의 소녀 아도나는 펜팔 친구에게 ‘내가 성폭행당하거나 지난번 발굴된 시체들처럼 갈가리 찢긴 채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며 전쟁의 참상을 전한다.

그러나 ‘전쟁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를거야. 나도 너처럼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 소녀의 염원을 읽다보면 평화의 소중함이 그대로 가슴에 와닿는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그녀의 사후 2년이 지난 1947년 출간돼 2차대전을 겪는 소녀의 비극을 뒤늦게 전했다. 하지만 아도나의 E메일은 리얼 타임의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신 유고연방이 형성되며 자치주(自治州)내의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의 민족 갈등 끝에 일어난 코소보의 전쟁은 하루 빨리 종식돼야 한다. ‘코소보의 안네 프랑크’ 아도나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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