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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2월 18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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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의 이야기 골격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늙은 노처녀와 외톨이가 되어버린 소년이 함께 소년의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 착한 여자가 불쌍한 아이를 돕고 끝부분엔 눈물의 해후가 기다리는 감상적인 영화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중앙역’은 그런 상투적인 감동에서 한 발 비켜 서 있다.
과다한 신파조의 대사도, 관객이 ‘영화니까…’하고 참아줘야 하는 갑작스런 비약도 없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훈훈해져 오는 이 영화의 힘은 살아 숨쉬는 현실적인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전직 교사인 도라의 직업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의 번잡한 중앙역 한 구석에서 문맹인 서민들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 그러나 그는 그 편지들을 한 번도 부쳐본 적이 없는데다 가난한 사람들의 구질구질한 사연을 비웃기까지하는 냉소적인 여자다.
우연한 사건에 얽혀들어 도라는 영악하기 짝이 없는 아홉살짜리 소년 조슈에를 아버지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길을 떠나는 신세가 됐지만 그에게 소년은 틈만 나면 떼버리고 싶은 혹같은 존재다.
조슈에가 아버지를 만나게 될지 어떨지는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월터 살레스 감독의 카메라는 상대방에 대한 짜증이 가득한 두 사람의 내면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감정의 움직임, 결국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게 되는 변화를 조용히 관찰하듯 담아냈다.
도라가 날이 곤두 선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과 화해하게 되는 과정은 주인공들이 여행을 통해 자기를 새롭게 발견하는 ‘로드 무비(Road Movie)’의 일반적 관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물씬한 사람냄새, 브라질 서민들의 고단하고 헐벗은 세상살이를 가감없이 담아낸 다큐멘터리적 연출기법은 이 영화가 지닌 또다른 미덕.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페르난다 몬테네그로의 연기가 탁월하지만 조슈에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비니시우스 드 올리비라의 연기도 빼어나다. 가난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를 하다 감독에게 “샌드위치 사먹을 돈 좀 달라”고 다가와 영화에 출연하게 된 소년. 한 번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이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연기했다. 올해 미국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지난해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