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46세 주신규감독, 한체대 태권도학과 진학

  • 입력 1999년 1월 27일 19시 07분


“오늘따라 한국체대 가는 길이 왜 이리 먼가. 잠실 숙소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데….”

26일 한국체대를 찾는 가스공사 태권도팀 주신규감독(46)의 마음은 이랬다.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걷는 그의 발길은 선수들과 찾던 체육관으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어린 학생들 틈에 끼어 99합격자 명단 게시판을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도둑장가’ 가듯 남 몰래 준비해온 대입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것. 올해 큰 아들이 고3이 되는 그가 왜 대학생이 되려 했을까.

“태권도 실기야 능하죠. 그런데 단순히 ‘기술자’인 것 같았어요, 철학은 없는…. 2년전 한국체대 태권도학과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꿈꿔왔는데 이제야 이뤘네요.”

주감독은 6개월 정도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선수들이 볼까 두려워 밤 늦게 슬그머니 예상 문제집을 들고 숙소 근처 다방을 찾았다. 무거운 눈꺼풀을 못 이기고 30분만에 책을 덮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쨌든 입학은 했지만 졸업할 게 막막하네요.” 쑥스러운 듯 그는 웃는다.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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