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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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은 또 한번의 힘들고 험난한 한해가 될 것이다. 안팎의 도전과 시련은 연속적이며 새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올 한해 우리가 씨름해야 할 국가적 과제는 크게 두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조기 극복과 21세기 새로운 미래를 위한 준비가 그것이다.

▼21세기 미래를 위한 준비

많은 사람들은 실업의 공포와 경제적 고통 속에 지난 한해를 힘겹게 넘겼다. 새해에도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이 빚어내는 두려움은 계속될 것이다. 여기에 북한 핵문제가 한반도를 위기국면으로 몰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의 이 총체적 위기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재도약을 기약하려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지혜가 절실하다. 세계사를 앞질러 가는 바깥 세상도 눈여겨 보면서 현명하게 변화의 흐름을 타야 한다.

우리는 올해로 1000년대를 마감한다. 다가오는 2000년대를 우리의 세기, 우리의 천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이 국민적 결집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국민의 무한한 잠재력을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다시 묶어 공동체발전의 동인(動因)으로 삼아야 한다. 이 일에 앞장서야 할 세력이 정치인이고 정치지도자들이다. 남북, 지역, 계층간의 3중갈등을 슬기롭게 풀면서 새로운 미래로 국민을 이끌어가야 할 책무를 그들은 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외면한 채 대결과 반목의 소모적 정쟁으로 98년을 허송했다.

99년은 ‘정치의 해’가 될 것이다. 정치의 과제는 크고도 많다. 그러나 그 전도는 불투명하다. 내각제개헌을 둘러싼 여여 여야 갈등도 그렇지만 정계개편 공방이 자칫 삼각파도를 휘몰아치면 언제 어디서 무슨 사단이 어떻게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나라에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데 국민이 오히려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희망이 없다. 아무리 당리당략이 소중하다 해도 국익보다 앞설 수는 없다. 지금 우리의 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를 가고 있는지 정치인들은 세계의 흐름에 스스로를 비춰 보아야 한다.

▼잊혀져가는 ‘IMF교훈’

지난 한해 혼신의 힘을 다해 경제위기와 싸운 결과 터널의 출구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는 대충 알았다. 각종 경제지표에 청신호가 켜지고 실물경제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우리는 이제 겨우 발등의 불을 껐을 뿐이다. 국난의 원흉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는 나아진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이곳저곳에서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거리는 차량홍수로 넘치고 해외여행객은 급증하며 유흥가는 다시 흥청거리고 있다. IMF의 교훈을 잊고 있다는 증거다. 금모으기창구에 줄설 때의 단심(丹心)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먼 옛날의 추억쯤으로 희석돼 버렸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IMF를 극복한 형국이다. ‘다시 1만달러 시대’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번에도 과욕과 거품이 엮어내는 ‘1만달러’라면 사양해야 옳다. 의식구조의 인프라부터 튼튼하게 다져놓지 않는 한 추락의 비극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그동안 기업구조조정의 밑그림은 대강이나마 그렸지만 IMF 2차연도인 올해는 할 일이 더 많고 일의 성격도 복잡할 것이다. 위기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중장기 성장전략을 새롭게 모색하면서 내실을 다져야 한다. 그러자면 경제가 정부주도보다 시장논리에 의해 지배될 수 있도록 경제운용의 방향과 방법을 바꿔야 한다. 환란 초기에는 정부개입이 불가피한 면도 있었지만 회복시기에도 관치가 계속되면 부작용은 클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공동체로 재탄생해야

수술 뒤의 봉합과정은 정교하고 치밀해야 한다. 대량도산으로 빚어진 경제구조상의 공백을 메우고 구조조정으로 시달린 대기업의 건강을 회복시켜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2백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 실직자 대책도 막중하다. 이들의 고통을 가슴에 안고 희망을 함께 나누는 포용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21세기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문명사회가 될 것임이 예고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요소투입적 성장전략에서 탈피해 새로운 전략산업과 발전모델을 찾아내는 일이 급하다.

나라가 부도 직전까지 간 것은 정치나 기업만의 책임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일한 만큼 응분의 대가가 공평하게 돌아온다는 믿음, 질서를 지켜 줄을 서면 반드시 차례가 온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줄을 선다. 우리는 그동안 그것을 너무 무시하고 뒤죽박죽 살아왔다. 부정한 돈이, 남의 기회를 새치기하는 반칙이 판을 치는 사회에 공정경쟁의 틀이 유지될 리 없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시련은 오히려 지금부터다. IMF를 극복한다고 옛날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새로운 공동체로 재탄생해야 한다. 문명사적 전환기를 우리는 통과하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지도자들이 역사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적어도 후대에 부끄러운 조상은 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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