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이견 허용않는 「빅딜」

  • 입력 1998년 12월 21일 19시 24분


21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만난 경제부처 관리들은 빅딜의 ‘빅’자만 들어도 몸을 움츠렸다.

“대우 삼성간 빅딜이 정부 주도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산업자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제발 날 좀 살려달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동안 사석에서 수차례 빅딜 회의론을 펼쳤던 재정경제부의 한 관리는 이날 “빅딜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태도가 돌변했다.

배순훈(裵洵勳) 정보통신부장관이 빅딜 반대 발언으로 18일 경질되고 산자부 실무국장이 비슷한 이유로 문책성 전보를 당한 뒤 과천관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웃지 못할’ 분위기다.

정부산하 경제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몇몇 연구원들이 최근 정부 주도의 빅딜에 대해 회의론을 제기한 뒤 청와대에서 KDI로 잇따라 걸려오는 전화의 뜻도 쉽게 짐작이 간다.

새 정부 출범후 경제부처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청와대는 ‘민주적 절차를 중시하는 대통령의 의지’를 강조했다.

현정부 경제부처 조직개편의 취지와 1주일에 3차례 이상 경제부처간 회의를 갖는 것도 다양한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빅딜에 있어서만은 이 원칙은 지켜서는 안될 금기(禁忌)가 되고 있다. 빅딜 반대발언을 잠재우려는 편에 있는 사람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들의 자율에 맡기면 어느 세월에 개혁을 하겠느냐”는 주장이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동의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부가 너무 경직돼 있다는 소리가 만만치않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획일된 목소리를 강요한다면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뒤탈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 중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때마다 왜 힘들여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지 새겨봐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현진(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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