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반도체 빅딜」일본의 안도

  • 입력 1998년 12월 13일 19시 06분


일본의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통산성과 반도체업계가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96년부터 이어진 반도체불황에 따른 적자로 일본 반도체업체들은 올 여름까지 경쟁적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을 줄이거나 팔아치워 왔다. 히타치(日立)제작소가 미국내 공장을 없앤 것을 비롯해 미쓰비시(三菱)전기 후지쓰(富士通) 도시바(東芝)사 등의 감산(減産)발표가 잇따랐다.

그러나 최근 세계 반도체경기의 회복과 공급부족을 예상하는 보고서가 쏟아지면서 일본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낭패감과 후회에 빠져 있다. 일본의 IDC저팬은 “일본의 반도체사업 연쇄축소와 미국 개인용컴퓨터시장의 수요증가로 전세계 수요에 대한 D램 공급률은 99년 94%, 2000년 90%로 공급부족이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본은 특히 반도체경기 회복으로 채산성이 높아진 것 못지않게 대규모 감산결정으로 국제시장에서 일본제품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급락할 것을 걱정한다. 통산성은 이미 각 업계에 반도체 생산증가에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적극 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경쟁국인 한국의 ‘반도체 빅딜’ 소식은 일본에 ‘한줄기 서광’으로 비쳐지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 먹느냐 먹히느냐의 경쟁무대에서 한국이 스스로 생산능력을 줄이려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일본기업인은 “한국은 재벌구조개혁이라는 기본방향은 잘 잡았지만 산업정책에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장상황 변화를 고려한 정책시행시기의 유연한 선택”이라며 “한국이 반도체 시설을 줄이면 우리로서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세계시황의 판단을 그르쳐 반도체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는 비아냥 섞인 지적으로 들렸다.

권순활<도쿄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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