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48)

  • 입력 1998년 12월 13일 19시 06분


화적 ④

언론과 광고 쪽을 내가 꽉 잡고 있다는 승주의 말에 대해 나는 굳이 부정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내 표정은 계속 무표정했다. 뻬뜨루 최가 내게 존경이 담긴 눈길을 보내왔다.

“김 이사님. 부끄럽지만 제 자서전 하나 써주실 수 없을까요. 브라질에 와서 한 보름만 저하고 함께 다니시면서 취재 좀 하시고요. 체류비용, 원고료, 다 선금을 내겠습니다.”

나는 글쎄요, 하고 애매하게 대꾸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벌어지는 입을 다물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조국과 승주는 뻬뜨루 최를 떡집 앞까지 배웅했다. 떡집과 세탁소에서 또 부부가 문을 하나씩 열고 내다보는 가운데 뻬뜨루 최는 열렬한 전송을 받으며 떠났다.

사무실로 되돌아온 조국과 승주는 비로소 마음껏 흥분했다.

“우선 사람이 솔직하다.”

“인간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냐? 순수한 면도 있고 통도 크고.”

“십 년만에 만나본 진정한 남자야.”

주고받는 말을 듣자 하니 마치 자기들이 순진한 교포 사업가를 사기치는 걸로 아는 눈치였다. 그러나 뻬뜨루 최야말로 세련된 사기꾼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가 우리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사업계획 중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쇼도 아니고 매체 창간도 아니었다. 자서전 발간 정도였다. 닳고닳은 그가 우리 셋 가운데 나만이 제대로 일을 할 만한 사람임을 못 알아볼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선금을 준다면 할 생각이었다. 조국이나 승주 같은 사이비가 끼어들지 않고 나 혼자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원고만 써주면 책이야 나오든 말든 내 소관이 아니었다.

“야, 빨리 비자부터 내자. 다음주면 얼마 안 남았어.”

“11월이라도 거기는 덥겠지? 이태원 가면 반바지 파는 데가 있을지 모르겠네.”

“기왕 브라질까지 갔는데 펠레라도 만나고 올까.”

그런 말을 하는 동안에도 흥분한 조국은 방귀를 연발로 뀌어댔다. 조국의 방귀는 때와 장소를 전혀 가리지 않는 담대함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명성을 얻은 바 있었다. 냄새 및 음향의 조화 또한 절묘했다. 국어선생이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는 시귀가 ‘공감각(共感覺)’을 표현한다고 가르치면서 조국의 방귀를 예로 들었을 정도였다.

신나게 떠들어대던 조국이 멍한 표정으로 어쩐지 잠깐 말을 멈춘다 싶으면 우리는 모두 알아서 코를 싸쥐거나 얼굴을 돌렸다. 조국이 자수를 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 나오는 장동휘처럼 “동지! 이 자리를 피하시오!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어서!” 하면서 엉덩이를 조금 쳐들어 보이면 우리는 화생방 훈련 때처럼 순식간에 싹 흩어지곤 했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국은 유난히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오줌을 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귀를 뀌고 나오기 위해서였다. 괄약근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그런 문제라면 조국만한 전문가도 별로 없을 것이다. 뻬뜨루 최와 얘기하는 동안 방귀를 뀌기 위해 딱 한 번 화장실에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이 얼마나 그의 말에 현혹되었는지 증명이 되는 일이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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