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햄릿의 비극과 北核

  • 입력 1998년 12월 11일 19시 25분


최근 국제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북한 핵문제를 필자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맥락에서 접근하고 싶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모두 횡사하고 특히 주인공 햄릿이 진검(眞劍)승부에서 이기고도 죽는다는 끝맺음 때문이다. 그는 분명히 이겼다. 그러나 상대방의 칼을 맞을 때마다 그 칼에 남모르게 미리 발라졌던 독이 차차 전신에 퍼졌기에 숨지고 만다.

▼ 이겨도 죽게 되는 결말 ▼

그동안 남북은 50년 넘게 군사대결을 계속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각각 엄청난 규모의 무력을 확보했다. 끔찍한 가상이지만, 만일 남북이 현재의 파괴력만을 모두 동원해서 진검승부를 벌인다면 한반도는 철저히 파괴될 것이다. 그래도 최후의 승리는 남한으로 귀착될 것이다. 북한이 자신의‘최후’를 감지하고 동반자살을 시도한다는 뜻에서 기습전쟁을 일으킨다고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력인 한미연합군은 그것을 분쇄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경제의 철저한 파탄과 주민의 만성적 피로로 말미암아 전쟁지속능력을 잃었다. 따라서 남한의 주민들이 적어도 1주일만 정부를 믿고 질서를 지켜주면 최후의 승리는 남한이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는 ‘폐허 위의 승리’일 것임에 틀림없다. 상황이 너무 처참해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을 부러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에 북한의 핵무기 확보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자. 만일 남북의 진검승부 때 북이 핵무기를 손에 넣고 있다면 햄릿의 비극은 바로 우리의 비극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개발은 도대체 어떤 지점으로까지 와 있는가. 필자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자료들을 입수할 수 있는 한 모두 찾아 읽었다. 그런데도 정확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아마도 탄두 1,2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것이다”로부터 “아마도 폭탄 2,3기 또는 4,5기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것 같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핵과학자일수록 낮춰 평가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과연 우리 정부의 극소수 수뇌급 인사들은 정답을 갖고 있을까.

▼ 北 불확실성을 무기로 ▼

어떻든 그 대답들에 ‘프로버블리(Probably·아마도)’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확실하게는 모르겠다는 함의(含意)이다. 이 불확실성을 북한은 협상의 무기로 쓰는 것이다. 계속해서 뭔가 있는 듯 냄새를 피우거나 연기를 뿜어내야 미국이 덤벼들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 바짝 논의되는 금창리 지하시설도 그렇게 심각하게 위험스러운 것이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불확실성 때문에 그것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 중요한 거래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일부 보수강경세력은 금창리 지하시설의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면 선제공격으로 파괴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것이 내년 봄과 여름 사이에 조성될 것이라는 ‘한반도 위기설’의 뼈대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바야흐로 새로운 장사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계산할 것이다. 93∼94년에 이어 새로운 형태의 벼랑끝 외교가 미국을 상대로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사람들의 표현으로, 이번에는 다시 기만당하지 않을 수 있다. 94년에 맺어진 제네바합의가 파기될 수 있으며 북한에 대한 공세적 외교가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어느 곳에서도 핵무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앞으로 서너해 사이에 더 이상의 진전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미―북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

그것에 따라 앞으로 몇해 사이에 북한은 미국 및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이룩하고 북한의 존속을 보장받게 된다. 그것이 확실해지고 나면 남북관계의 공식적 정상화가 뒤따르게 되고 마침내 한반도 평화협정이 마련될 수 있다.

▼ 핵개발 진상파악 시급 ▼

이 시나리오가 실현될 때 비록 밉살스러운 북한이 살아난다고 해도 햄릿의 비극은 덴마크에 한정될 것이다. 우리 외교안보의 최우선 과제는 다음 정권에서라도 그러한 시나리오를 성사시키는 일이 아닐까. 그렇지만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개발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그 진상에 따라 우리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군에서 빈발하는 것을 보니 그런 주문이 지나치지 않은가 걱정된다.

김학준(인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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