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낙연/젊은 의원들에게 할 말 있다

  • 입력 1998년 11월 23일 19시 19분


최근 일본정치에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금융개혁의 큰 쟁점이었던 법안의 채택에서 야당이 완승했다. 금융기관 파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담은 8개 법안, 이른바 금융재생법안을 정부여당이 야당안대로 받아들였다. 예전같으면 여당에서 총리퇴진이 거론됐을 만한 사건이다.

더구나 정부여당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내각 때부터 금융재생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만든 장본인은 이미 총리를 지낸 경제전문가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였다. 하시모토에 이어 취임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그 미야자와를 대장상으로 모셔왔다. 그래도 정부여당은 체면과 자존심을 접었다.

이런 일을 이룬 것은 오부치도 미야자와도 야당당수도 아니다. 젊은 국회의원들이다.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의원같은 여야 소장파 전문가들이 논의를 거듭했다. 이들은 야당안이 합리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여당 지도부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여당은 혼란을 겪었다. 법안을 아는 소장파는 힘이 없고, 늙은 간부들은 법안을 잘 몰랐다. 결국 간부들이 양보했다. 젊은이들이 이겼다. 크게 보면 소장파의 전문성과 지도부의 포용력이, 야당의 대안과 여당의 아량이 함께 이겼다. 이들 젊은 정치인에게는 ‘정책 신인류(新人類)’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파벌이나 정당에 덜 구속되고 민생과 세계에 눈을 돌리며 정책에 힘을 쏟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을 말한다.

우리 국회에서 추미애(국민회의) 박종웅 안택수(한나라당)의원이 당론과 다른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됐다. 그것도 특별검사제와 금강산관광, 김영삼전대통령 증인소환같은 예민한 문제에서 당론을 거슬렀다. 장려할 일이다. 국회의원이 앵무새와 거수기로만 머물러서야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 자기 소신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정권향방에 치명적이지 않은 정책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현실은 아직 밝지 않다. 여야당 지도부는 아량이, 젊은 의원들은 공부와 대안이 부족하다. 그동안의 정쟁에서는 오히려 초선의원들이 여야 강경론을 주도하거나 나팔수가 됐다. 여당에서는 야당시절의 ‘싸움닭’들이, 야당에서는 여당시절의 ‘공안파’가 여전히 행세했다. 여야는 지난해 대선체제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대선이후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은 부총재에서도 드러난다. 국민회의에는 아직도 15명의 부총재가 있다. 이들이 총재 다음으로 세다고 믿는 사람이 없는데도 허울 그대로 두고 있다. 한나라당은 부총재가 아예 없다. 당내 형편 때문에 지명도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 여야는 새로운 지향에 걸맞게 진용부터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체제정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누가 되건 지도부의 행태가 변하기란 쉽지 않다. 역시 젊은 의원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눈을 더욱 넓게 뜨고 한 분야라도 깊게 공부하며 정책에 매달려야 한다. 정쟁에 앞장서기보다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정치도 조금씩 바뀔 것이다. 낡은 잎이 떨어진 뒤에 새싹이 나오는 게 아니다. 새싹이 나오는 힘에 밀려 낡은 잎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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