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9)

  • 입력 1998년 10월 29일 18시 14분


교유 ②

깡패들이 유독 가을을 탄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창밖에 나뭇잎이 물드는 것만 물끄러미 쳐다보며 두환이 아예 말문을 닫은 지 며칠이 되었다.

우리는 그의 심사를 달래주기 위해 주머니를 털어서 중국집에 모여 앉았다. 그것만 봐도 우리가 두환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에 얼마나 기대가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환이 그 무거운 입을 한 번 열었다 하면 삼백 명 정도의 깡패들이 죽고, 삼십 명 정도의 애첩들이 옷을 벗는 얘기들뿐이었다.

―두환이 너 요새 무슨 일 있냐?

―집안일이야.”

그 말이 더욱 우리의 흥미를 돋웠다.

그의 형은 ‘배차장파’인지 ‘월드컵파’인지 하는 조직의 똘마니였다. 소처럼 엉덩이에 소속파의 이름을 인두로 지져 새겨넣은 걸 봤다고 했다. 두환에게 들은 얘기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형은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 방구들을 끼고 뒹굴고 있었다. 허구헌날 어머니에게 밥구더기니 등신이니 욕을 들었고, 일껏 구멍가게에 나가소주를 팔아주는데도 가게 주인한테 형편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형은 인생이 우중충하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선배가 찾아왔다. 겉멋으로 두어 번 싸움질에 끼었을 때 알게 된 선배였다. 선배는 형의 몰골을 보더니 ‘괜찮은 놈’을 그런 식으로 대접하는 세상에 비분강개했다.

형은 당장 방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어머니 없는 틈을 타서 선배를 따라갔다. 그리고 호사스러운 숙식을 제공받았다. 처음 받아보는 인간대접이었다. 형은 투견이 사육되는 이치를 몰랐던 것이다. 고기를 먹고 늘어지도록 자고 운동을 하는게 일과인 형은 ‘몸 만들기’란 말도 몰랐다. 형은 이렇게 공짜로 놀고 먹을 수는 없다고 말해보았다. 그러나 선배는 ‘피곤한데 푹 쉬기나 하라’는 거였다. 놀고 먹는 게 약간 피곤하긴 하더라고 대꾸할 뻔한 형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가끔 이 모든 은혜를 주는 사람이 ‘큰형님’이란 말은 했다.

그날도 선배가 찾아왔는데 어쩐지 얼굴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요, 말씀해주세요! 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배가 말했다. 내가 아니라, 큰형님이. 뭐라구요? ‘큰형님’이란 말만 들어도 형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별 건 아니고, 좀 귀찮게 하는 놈들이 있어서. 어떤 놈인지 말씀만 하십쇼! 네가 나설 것 없고. 큰형님도 너를 아껴서 이런 일에 끼어드는 건 원하지 않으신다. 큰형님이요? 으흑! 이런저런 경위로 형은 큰형님이 제거하려는 상대파 거물을 등뒤에서 칼로 찔렀고 15년형을 받아 감옥에 있다는 사연이었다. 물론 형기를 마치면 나이트 클럽 경영 따위의 직업과 조직의 존경심으로 여생이 보장된다.

―너희 형은 그럼 지금 감방에 있냐?

―아니. 우리 형이 아니고 형 친구 얘기야. 그 형 지금쯤 고생 많을 거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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