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질책

  • 입력 1998년 10월 21일 18시 59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내각질책이 계속되고 있다. 때가 때이니 만큼 경제부처 장관들이 질타의 주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엄청난 재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각종 경제정책들이 겉돌고 있다는 지적은 국민의 시각과 대통령의 시각이 일치한다. 대통령의 질책은 대통령 자신의 정부에 대한 자책성 비판으로도 해석된다.

김대통령이 20일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언급한 내용은 수출부진과 미진한 공기업개혁 그리고 금융기관의 신용경색과 성과없는 실업대책으로 요약된다. 책상머리에서 작성된 각종 수출진작책이 현장에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기업현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왔던 불만사항이다. 개혁요구에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는 공기업의 자세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사안이다. 예산만 낭비하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업대책은 실패할 때 가공할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거리였다. 대통령의 질책이 있기 전에 장관들이 몰랐을 리 없는 문제들이다. 그런데도 특별히 시정되는 기미가 없었다.

이날 대통령의 지적 가운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경제회복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은행의 신용경색부문이었다. 소비금융의 위축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달리 약이 없다. 그러나 은행의 소극적 자세 때문에 빚어지는 산업자금의 공급부진은 문제가 다르다.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금융개혁이 끝났는데도 은행의 자세가 변하지 않았다는 실망의 목소리가 크다. 기업에 돈을 풀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자금을 굴릴 데가 없다고 투덜대는 은행의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신용경색이 꼭 은행들만의 책임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은행 구조조정과정에서 부실채권과 관련해 문책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돈을 안줘 기업을 죽인 은행원은 무사하고 소신껏 대출했다가 잘못되면 정리해고 당하는 것이 요즘 상황이다. 경기는 바닥에 있고 문책의 서슬은 시퍼런데 목을 걸고 대출해줄 은행원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정부가 대책없이 은행만 윽박지른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래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공동여당인 자민련 경제대책위가 제시한 대안도 눈여겨 볼 만하다. 정상적 절차에 따른 여신취급에 대해서는 면책제도를 법제화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준금을 국공채로 대체하는 제안 또한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대통령의 질책대로 장관들이 현장에 나가보면 대안을 찾는 일은 보다 쉬울 수 있다. 산업자금이 풀려나가야 실업과 수출의 동시 해결이 가능하다. 정부가 다양한 제안들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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