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윤철/『장애도 서글픈데…』

  • 입력 1998년 10월 2일 17시 20분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박모씨(36·대전)는 지난달 중순 모처럼 가족과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가 겪었던 불쾌감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사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과천∼의왕 매표소에 장애인 할인카드를 내밀자 직원은 “이곳에서는 그 카드로는 할인이 안된다. 저쪽 끝에 있는 매표소에서 장애인 할인권을 사오라”고 말했다.

목발을 사용해야 하는 박씨는 난처했다. 할 수 없이 부인이 표를 사기 위해 몰려드는 차들 사이를 지나 맨 끝 매표소로 갔다.

그러나 한참만에 돌아온 박씨의 부인은 격앙돼 있었다.

“낱장으로는 팔 수 없으니 10장이상 한꺼번에 구입하라”는 매표소 직원과 또 한차례의 승강이를 벌였던 것.

그 직원은 할인권을 판 뒤에는 상부에 결재를 올려야 하는데 8백원짜리 통행권 1장 때문에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는 것이 귀찮다는 투로 10장 묶음을 살 것을 요구했다.

한참 동안 승강이가 계속되자 매표소 직원은 “차라리 4백원을 줄테니 보태서 일반표를 사라”는 말을 했다.

박씨는 “우리가 4백원 때문에 이러는 줄 아느냐”고 화를 냈고 한참 항의한 끝에 ‘장애인표’를 살 수 있었다.

박씨가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40여분. 나들이 기분은 이미 잡쳐 버렸다. 장애도 서글픈데….

“이번 일이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만 우연히 생긴 일인줄 아십니까. 우리사회 곳곳에서 장애인에 대해 ‘제도 따로, 시행 따로’의 상황이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허울뿐인 장애인 시설과 제도에 이제는 지쳐버렸습니다.”

박씨의 하소연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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