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인길/전경련 金회장 「빅딜」로 말하라

  • 입력 1998년 9월 16일 19시 23분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제24대 회장으로 취임한 김우중(金宇中)대우회장은 여러가지로 어려운 시점에 힘든 자리를 맡았다.

나라 경제가 지금 같지만 않았어도 그의 등장은 21세기 재계 리더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운해 할 것은 없다. 전경련의 역대 회장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대 회장을 지낸 삼성의 이병철(李秉喆)씨는 61년 쿠데타의 와중에 변변하게 경제랄 것이 없는 험난한 시절 딱 한번 회장을 했고 다섯번의 회장을 지낸 현대의 정주영(鄭周永)씨는 70,80년대에 걸친 재임기간 내내 권력에 시달렸다. 얼마 전 타계한 최종현(崔鍾賢)씨도 한국 경제의 속병이 깊어진 90년대 초반 역시 권력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

역대 회장의 궤적은 바로 한국경제의 격동사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권력과 재벌의 이면에선 오히려 갈등과 마찰과 대결의식이 더 노골화하는 조짐이 엿보인다.

이 점에서 보면 김우중시대의 전경련은 재계의 총본산으로 ‘혁명적인’ 경제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며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 과업을안고출범하는셈이다.

김우중회장의 등장은 우선 총수 회장시대에 한 획을 긋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그는 자신의 말처럼 마지막 창업1세대에 해당한다. 그러면서도 재계의 원조격인 이병철씨나 정주영씨 같은 창업세대와는 또 다른 2세대다. 성장환경도 다르다. 이씨와 정씨가 60년대 경제의 불모지대에서 숱한 실패와 가혹한 시련의 인생역경을 경험하며 대재벌을 축성했다면 김회장은 70년대 수출붐을 타고 달러로 재력을 쌓았다.

원로 창업세대가 완승과 대로를 질주한 카리스마 세대라면 김회장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서 국제적 감각과 명쾌하고 당당한 기업논리를 갖춘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카리스마 시대가 퇴장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할 적임자로 그가 지목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렇다면 김회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기자는 여러가지 산적한 현안 가운데서도 국민의 재벌관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IMF 국가부도의 원인제공자로 지목된 이후 일반국민의 재벌관은 과거보다 더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부정 일변도의 재벌관이 왜 생겨났는지 그 원인을 지금 따져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은 재벌을 여전히 ‘특혜집단’으로 생각하고 정부는 국민여론에 발목이 잡혀 촉진적인 기업정책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기업없는 경제는 상상할 수 없다. 이제 모든 해결의 실타래는 기업이 나서 풀어야 한다. 지금 한창 판을 벌이고 있는 대기업 구조조정이 국민적 요구와 정서에 부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빅딜 협상이 모양좋게 성공하려면 김우중회장은 총수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여기엔 김회장의 개인적 열정과 역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인으로서 공정한 자세와 투명한 토양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대우회장 김우중이 아닌 전경련회장 김우중으로서.김회장 자신은 의식하지 않고 있겠지만 재계 일각에서 김회장의 스타일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경계하는 기류가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재계의 원로들이 왜 김회장을 배척했는지 그 이유를 깊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이인길<정보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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