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배인준/「DJ노믹스」는 어디에…

  • 입력 1998년 9월 2일 19시 58분


배인준
정부와 관변연구소 사람들이 1일 김대중대통령의 경제관에 살을 붙여 ‘DJnomics,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연다’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국민의 정부 경제청사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타파해야 할 것과 창달해야 할 것을 제시한다.

없애야 할 것들. 권위주의적 인치적 관치경제와 자의적 개입, 특히 관치금융, 불필요한 규제, 정경유착, 부정부패, 도덕적 해이, 특혜, 무책임 불투명 경영, 경직된 노동시장….

세워야 할 것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자율과 창의, 질서있는 자유와 자기책임, 공정 투명한 경쟁규칙, 규제철폐, 유연한 노동시장, 민간에 서비스하는 작은 정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이 가운데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불러온 김영삼정부의 ‘신경제’에서도 들어본 말이 많다. 그러나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문제는 말이나 구호가 아니라 행동과 실천, 전략과 목표관리능력일 것이다.

‘DJ노믹스’는 과거 정부의 관치 인치적 요소와 미숙한 대응이 경제위기를 불렀다고 진단했다. YS정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다짐도 들어있다.

그러면 DJ노믹스는 현실에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가. 기아자동차 국제입찰, 현대자동차 노사분규 대응, 대기업간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유도,은행장인사등을 지켜보며 DJ노믹스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부는 겉으로 기아의 공정 투명한 입찰을 강조했다. 그러나 청와대 등 정부 의도가 유포됐고 결국 불투명한 유찰로 1막을 내렸다. 정부가 공정 투명한 경쟁원칙만 제시하고 ‘직접, 그것도 미숙하게’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대외신인도 손상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와 여권은 정리해고를 둘러싼 현대자동차 노사분규에도 지나치게 개입해 해결 아닌 미봉으로 일단락지었다. DJ노믹스가 표방하는 질서있는 자유도, 유연한 노동시장도 뒷전으로 밀렸다.

대기업간 빅딜에 있어서도 자율의 깃발 뒤에서 자의적 개입이 반복됐다. 산업자원부는 5대 그룹이 ‘자율 구조조정안’을 매듭짓기도 전인 8월31일 “오늘 발표한다”고 터뜨렸다. 타순이 잘못되고 배팅도 미숙했다.

주택은행장 선임과정에서도 정부는 특정인의 선임을 강요했고 끝내 1차투표결과를 뒤집었다. DJ노믹스가 강조하는 절차중시정신은 여기서도 실종됐다.

정부의 무원칙과 언행불일치는 기업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증대시키며 민간의 냉소와 불신을 키운다. 신뢰는 백마디 말보다 한두가지 분명한 행동에서 판가름난다.

정부는 DJ노믹스에서 “시장의 형성이 미흡한 부분에 정부가 적극 나서는 것은 개입이 아니라 시장을 보호하고 질서형성을 촉진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을 질서형성 촉진행위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까, 자의적 개입으로 보는 사람이 많을까.

DJ노믹스의 요체인 전면적 경제구조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1만1천개에 이르는 규제와 불필요한 개입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관치도, 정경유착도, 부정부패도, 도덕적 해이도 없앨 수 없으며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허구일 뿐이다. 김대통령 스스로 DJ노믹스가 경제현장에서 어떻게 굴절되는지 좀더 냉철하게 살피고 시장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같다.

배인준<경제부장>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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