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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26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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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부임지로 떠나는 남편을 위해 이삿짐을 꾸리는 일이.
고건(高建)서울시장 당선자의 부인 박현숙(朴賢淑·60)씨는 선거가 끝난 뒤 한바탕 앓아 누울 새도 없이 남편 뒷바라지에 다시 분주해졌다. 낮엔 선거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인사다니고 밤엔 다음달 1일 혜화동 시장공관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옷가지와 책들을 챙긴다. 박씨는 막내아들과 동숭동 자택을 지키면서 시장공관에 ‘출퇴근’할 예정이다.
“30년 넘게 공직에 있었고 10년전 서울시장을 지냈지만 이번엔 각오가 다릅니다. 그분이나 저나 공직에서 봉사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분은 일하고 결혼한 사람이에요. 하루 5시간 이상을 주무시지 않아요. 집에 들어와서도 늦게까지 서재에서 일과 씨름하지요.”
‘잘나가는 남편’의 아내 노릇은 만만치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엔 수천포기씩 새마을 김치를 담그고 밤새 재봉틀을 돌리며 새마을 가방을 만들었다. 국회의원선거 땐 손님을 치르느라 자기 전에 김을 3백장도 넘게 재워 놓아야 했다.
그때마다 큰 힘이 돼준 사람이 시아버지인 고형곤(高亨坤)전전북대총장이다. 며느리의 시집살이가 안타까워 “직장에 나가라” “서화 전시회를 열어보라”고 마음 써준 사람도 시아버지다.
일에 남편을 빼앗긴 박씨는 재즈 피아노를 치고 붓글씨를 쓰고 글을 지으며 빈자리를 채웠다. 96년엔 예술세계지에 수필로 등단해 뒤늦게 작가의 꿈을 이뤘다.
“시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시면 같이 여행도 다니고 글도 계속 쓰고 싶어요. 쓰고 싶은 얘기들이 많은데 공직에 있는 동안은 아무래도….”
박씨는 고당선자가 퇴임하면 수필집을 펴내는 게 꿈이다. 이화여대 메이퀸으로 화려했던 대학시절,‘흑곰’이라 불렸던 멋없는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 유학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연,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능곡 저수지를 횡단하려다 물에 빠져 구조된 남편의 이야기 등 수필집에 담고 싶은 추억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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