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김경달/『집주인도 할 말 많아요』

  • 입력 1998년 6월 17일 19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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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만 괴로운가, 우리도 할말이 있다.’

17일 오전 10시경 서울 강남구청 공보계에서는 8명의 이 동네 주부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한때는 서울 강남의 대표 주민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제 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강남구 삼성2동의 ‘이웃사촌’이자 다가구주택 주인인 이들은 대부분 대학교수와 은행원 회사원 사업가를 남편으로 둔 비교적 유복한 가정의 주부들. 하지만 최근 경기침체와 함께 전세금이 급락하면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7가구의 세입자를 둔 다가구주택의 주인인 구모씨(48·강남구 삼성2동).

사업을 하는 남편과 3자녀를 두고 단란한 생활을 꾸려온 그는 96년 다가구주택 신축붐이 일 때 ‘더불어 살자’는 생각으로 널찍하던 집을 헐고 다가구주택을 지었다.

“최근 세입자들과 면담해서 다행히 다섯가구는 전세금 일부를 깎아주고 원만히 해결했어요. 하지만 두 가구가 나가게 돼서 ‘급전 1억6천만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요즘 은행융자가 ‘이자감당이 불(不)감당’이잖아요.”

옆에 있던 한 주부는 “전세융자를 해준다고 하지만 이자가 너무 높아 별반 도움이 안 되지 않느냐”며 거들었다.

이날 어떻게든 어려운 처지를 밝히고자 구청을 찾았던 ‘강남 주부들’은 A4용지 두장 분량으로 자신들의 고통을 적은 호소문을 내밀었다. 또 ‘재산세를 현실에 맞게 낮춰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발걸음을 돌리던 한 주부는 “심지어 은행에 집이 넘어가고 세입자들의 등쌀에 못이겨 반바지 차림으로 밤중 도주를 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에요.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건가요”라며 한숨지었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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