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영한/어려운 때일수록 기술개발을…

  • 입력 1998년 6월 8일 19시 57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맞은 뒤 기술개발의 중요성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현 위기의 근본 원인이 차입 자본과 노동력에 기반을 둔 성장전략에서 기술혁신에 의한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데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기업의 연구개발(R&D)투자 축소나 인력감축, 공공연구기관의 맥빠진 분위기는 분초를 다투는 경쟁국들의 기술경쟁 상황에 비춰볼 때 자못 염려스럽다.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개발 대책을 산업기술분야 중심으로 몇가지 제시한다.

▼ 산학연 협동 강화해야 ▼

첫째, 수요 중심의 성공 확률이 높은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이라면 거대과학이나 최첨단기술을 연상하지만 경쟁국에 밀리는 것은 대부분 ‘한발짝 앞선 기술’이다. 우리가 주력해야 할 분야는 산업에 따라 첨단기술이 될 수도, 턴오버 속도가 느린 기술이나 틈새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이든 시장수요가 커야 하며 원료 마케팅 R&D인프라 측면에서 비교우위가 있고 우리것으로 만들 수 있는 성공확률이 높아야 한다. 아울러 정부나 공공의 연구역량도 지금은 경제회생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한걸음 다가가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둘째, 국내외 우수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7천여 기업에는 전세계 인재들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몰려들어 인재의 풀(Pool)이 형성되고 기술의 상용화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우리의 젊은 고급두뇌들은 대학을 찾아 안주하는 것이 일차 목표다. 기술혁신을 위해서는 국내 인력은 물론이고 교포나 개도국 우수인력까지 연구현장에 모아야 한다. 최근 나타나는 대기업의 연구인력 감축 바람이 주력기술의 전략적 조정이라면 바람직하지만 단순히 비용절감을 위한 것이라면 미래가 어둡다.

셋째, 기업 중심의 산학연 협동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 대학 공공기관의 협동은 지식과 아이디어의 순환, 자본과 기술의 결합에 의한 실용화 진작, 인적 자원의 효과적 활용면에서 필수적이다. 협동연구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겸직제도나 장기파견 같은 실질적 인적 교류와 정부출연기관의 산연협동연구시 인건비 및 보조금(Matching Fund)제공, 인센티브 제도 등에 의한 적극적인 확대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기업이 투자하는 협동연구가 커져야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넷째, 벤처산업의 효율적 육성이 요구된다. 최고 호황기의 미국경제와 아시아 위기에도 끄떡없는 대만경제 뒤에는 수많은 벤처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와 고부가가치가 있다. 벤처산업의 성패는 기술 마케팅 벤처캐피털 산업단지의 집중성 등에 달려 있으나 우리는 기술과 아이디어가 특히 빈약하다. 기술이 없는 곳에 자금만 투입하는 것은 씨도 뿌리지 않고 비료만 주는 꼴이다. 정부는 인프라 조성 및 창업제도 개선과 함께 가능성 있는 기술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본 기술 마케팅네트워크 등을 독점해온 대기업이 벤처기업의 인큐베이터나 벤처캐피털회사 역할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 기술 갖춘 곳에 투자를 ▼

다섯째, 정부출연기관의 역동성과 대덕단지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정부출연기관의 구조조정은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고 연구단지에 활력과 역동성을 불어넣기 위한 운영제도의 혁신이어야 한다. 조직 중심의 외형개혁에 초점이 두어져서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연구원의 행정업무를 줄이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예산제도, 엄격한 성과 평가, 성과의 실용화를 위한 산연공조체제 구축이다. 또한 대덕단지의 한쪽에 외국과 같이 과학기술자 경영전문가 자본가 등이 수시로 모여 기술을 상용화시키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의 재도약 여부는 해외시장에서의 기술경쟁력 우위 확보에 달렸다. 우리 몸에 맞는 기술기반 산업전략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 30여년간 우리의 독자모델로 중화학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에서 성공했듯이 그 경험과 노하우에 기술혁신을 더한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권영한<미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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