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50년

동아일보 입력 1998-05-29 19:20수정 2009-09-2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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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가 출범한 지 내일로 50주년이다. 이 땅에 의회민주주의가 이식(移植)되고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 이 짧지 않은 기간에 국회는 한국 현대사와 굴곡을 함께 하며 국민의 기대와 질책을 동시에 받아왔다. 그리고 이제 미증유의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아 국회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회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착근시키는데 기여했다. 미(美)군정시대 유엔 한국위원회의 감시 아래 48년 5월10일 남한에서만 실시된 총선거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투표로 진행됐다. 이를 통해 5월31일 개원한 국회는 헌법을 제정하고 초대 대통령을 선출해 나라의 기틀을 만들고 정통성을 확립했다. 그 후 변칙개헌이 이뤄지고 한국동란의 와중에 한때 부산으로 피란했으나 헌정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개발독재가 시작되면서 국회는 수난의 시대를 맞았다. 5·16, 10월유신, 5·17로 이어진 정변으로 때로는 의사당에 탱크가 진입했고 의원들은 신분을 빼앗겼다. 국회는 ‘권력의 시녀’이자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 암울한 시절, 의원들은 길거리로 뛰쳐나와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동참하고 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싸웠던 87년 6월항쟁 이후 헌정의 타율적 중단은 없어졌다. 대한민국 국회 50년은 입법부로서의 본래 기능에는 미흡했으나 ‘민의의 전당’으로서는 고뇌어린 영욕의 세월이었다.

지금 국회는 당리당략의 볼모가 된 채 표류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정부가 들어서고 3개월이 넘었으나 국무총리 인준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 선거법 협상으로 몇주일을 보냈을 뿐,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다운 토론 한번 하지 않았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는 또 한번 여야의 절제잃은 승부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있다.

특히 국회는 IMF체제가 요구하는 제반 분야의 개혁을 뒷받침하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그나마 제2기 원(院)구성을 하지 못해 오늘부터는 의장단도 상임위원도 없는 ‘국회부재’상태에 빠졌다. 김대통령이 참석한 50주년 기념행사도 의장임기 마지막 날인 어제로 앞당겨 개최했다. 그리고 이제 국회는 정계개편이라는 ‘외과수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우울한 50회 생일이다.

시대가 국회에 짐지운 과제는 엄중하다. 국회를 보는 국민의 시선은 냉담하다. 국회는 국정 전반의 개혁에 솔선하고 자기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는 국회는 국민의 외면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이 외면하는 국회는 존립기반을 잃게 된다. 50세의 국회는 지금 위중한 시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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