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여고괴담」/귀신보다 무서운 「닫힌 교육」

입력 1998-05-29 07:37수정 2009-09-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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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이 아름답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말똥이 굴러가도 웃음이 나오는 시기라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좋은 일만 가득한 것도 아니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 친구들 사이의 질시와 따돌림, 교사의 편애와 폭력…. 여학교에 귀신에 대한 소문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학교라는 은밀한 공간의 억압과 공포를 미스터리 스릴러로 포장한 ‘여고괴담’이 30일 개봉된다.

허은영(이미연 분)이 졸업 9년만에 모교에 교사로 부임한 날. 전날밤 “죽은 진주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말해준 ‘늙은 여우’란 별명의 여교사가 흉칙한 모습으로 죽어 있다.

다 큰 여학생의 귓볼을 만지는 ‘변태’별명의 교사가 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성적과 집안배경 때문에 교사에게 차별받던 여학생이 자살을 한다. 은영의 배신과 ‘늙은 여우’의 부당한 대우 때문에 9년전에 죽은 진주가 정말 복수를 하는 것일까.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지만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이나 60년대 ‘월하의 공동묘지’의 단골 주인공이었던,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은 나오지 않는다. 여학교 생활을 경험한 사람은 쉽사리 수긍할만큼 ‘있음직한’ 소재를 택한 것은 신세대 관객을 겨냥한 참신한 연출.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귀신보다 무섭고 끔찍한 것은 학교라는 공간이며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교육제도 그 자체다.

공부못하는 학생은 ‘반 평균(성적)이나 떨어뜨리는 놈’으로 멸시받고 “분식점을 해도 서울대를 나와야 장사가 잘된다”는 대사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분수에 맞게 살자’로 급훈을 정한 교사의 체벌과 성적 추행은 요즘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기사들을 절로 떠올리게 만든다.

“학교가 점점 감옥으로 그리고 지옥으로 변해가는 요즘, 나는 피흘리는 학교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게 박기형감독의 말.

여학교를 다룬 만큼 15세이상 관람가능하다. 그러나 밤이 무서워진 학생들이 ‘야자(야간자습)’를 거부하거나 친구가 귀신이 아닐까 공연히 의심할까봐 걱정된다. “내가 네 친구로 보이니?”란 말이 유행할지도 모를 일.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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