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반병희/재경부의 「탁상행정」

  • 입력 1998년 5월 6일 19시 43분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새 정부 경제팀이 치밀한 검토 없이 불쑥 정책을 내놓았다가 시행착오로 쩔쩔매는 모습이다.

재경부가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각각 자본금 1조원 규모로 설립하겠다던 주식투자기금과 부채구조조정기금의 규모와 재원 마련 방안을 6일 수정키로 한 것이 실례다. 당초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차관자금 중 상당액을 두 기금에 출연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들 기관이 반대, 일이 뒤틀렸기 때문이다.

결국 재경부는 두 기금의 자본금을 각각 2천억원으로 줄이거나 산업은행과 시중은행 또는 정부가 현물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지난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주재한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재원의 상당부분을 IB

RD 등에서 끌어들이면 두 기금의 설치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던 보고가 무색해졌다.

정부가 실업대책 및 중소기업 지원대책의 ‘돈줄’로 치부했던 무기명 장기채 발행도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판매실적이 극히 저조하기 때문이다.

돈의 출처를 따지지 않고 금리를 올려주면 수십조원의 지하자금이 몰려들 것이라던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결국 ‘수십조원 규모의 지하자금’은 존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고 금융실명제만 떠내려보낸 꼴이 됐다.

재경부 산업자원부 및 여당이 합의해 5천억원 규모로 설치키로 한 외국인투자유치기금도 무산될 형편이다.

재경부 등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출연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외국인의 토지 및 공장 매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예산청과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대, 계획 자체의 포기를 검토중이다.

“사무관 한 명이 하룻밤새 꿰어맞춘 안을 정책이라고 내놓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어느 경제관료의 실토가 실감난다.

반병희<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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