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돋보기답사]신라土偶,대담한 性 표현

  • 입력 1998년 5월 4일 07시 50분


신라 토우(土偶)는 뜨겁고 대담하다. 그 사랑의 표현은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 절제와 감춤의 미학에 익숙한 우리 전통에 있어 신라 토우의 에로티시즘은 하나의 파격이자 충격이다.

5,6세기경 신라인이 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 토우. 한국 역사상 가장 강렬한 에로티시즘을 자랑하는 신라 토우. 그러나 신라 토우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1천5백년 전 신라인의 솔직함과 순수함에 놀라고 거기 숨어 있는 삶의 영원함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신라 토우는 우선 그 모양부터 보는 이를 흥미와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힘껏 껴안고 있는 남녀, 한 몸이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 성기와 가슴이 지나치게 과장된 남녀 등.

그 중에도 토우장식항아리(국보195호·국립경주박물관)의 남녀상이 단연 압권. 한 여인이 엉덩이를 내민 채 엎드려 있고 그 뒤로 한 남정네(머리와 오른팔이 부서져 있다)가 과장된 성기를 내밀며 다가가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도 적나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여인의 얼굴 표정. 왼쪽으로 얼굴을 쓱 돌린 이 여인은 히죽 웃고 있다. 아니, 보는 이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정작 주인공은 웃음을 흘리고 있다니. 저 익살,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것은 그러나 뻔뻔스러움이 아니라 신라인의 허심탄회 혹은 꾸밈없음이다. 신라 토우는 그래서 외설스럽지 않다.

강우방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설명. “토우의 허심탄회는 순수한 직관, 천진난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신라인의 밝고 낙천적인 삶, 티 없이 맑은 삶이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토우야말로 우리네 삶의 영원한 원형(原型)이자 영원의 현재(現在)다.”

신라 토우가 본능적 사랑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생(永生)에 대한 기원 역시 절절하다. 이것은 토우가 주로 무덤의 부장품이었다는 사실에서 쉽게 드러난다.

성의 결합은 새 생명의 탄생이며 이는 곧 죽은 이의 재생(再生)을 의미한다. 신라인은 이렇게 부활과 자손의 번창이라는 절절한 기원을 담아 의식을 치르듯 흙을 빚었던 것이다.

신라 토우는 또한 과감한 생략, 대담한 표현, 살아있는 표정 등, 그 조형미에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토우장식항아리의 엎드린 여인의 얼굴이나 사랑을 나누는 남녀(사진2)의 얼굴, 성기와 가슴이 과장된 남녀의 얼굴 표정은 살아 있음, 그 자체다.

능청스러운 듯하지만 밝고 상쾌하다. 단순한 듯 세련되고, 기교적인 듯 무심하다. 5,6㎝의 작은 흙덩이에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부여한 신라인의 손맵시가 놀라울 따름이다.

노골적이고 대담한 토우. 하지만 인간의 본능을 영원의 순수함으로 걸러낸 신라 토우. 토우의 뜨거움이 세월의 간극을 넘어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도 바로 이 순수함 때문이 아닐까.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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