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은경/살림쪼들려 헐값에 판 결혼반지

  • 입력 1998년 4월 30일 08시 05분


얼마전 결혼반지를 팔았다. 3분 이상되는 다이아몬드를 좋은 값에 매입한다는 광고를 보고 고민하다 들고 나갔다. 결혼 후 5년이 넘도록 세번도 안낀 반지였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아 안꼈는데 나중엔 손에 살이 붙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팔자는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래도 결혼 반지인데 이 반지를 팔아서 남편이랑 멀어지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들기는 했다.

아이 아빠가 작년 1월부터 월급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보너스를 반이상 줄이겠다고 사원들에게 통고했다. 보험금이며 유치원비 생활비 등 매달 꼬박꼬박 들어가는 돈은 그대로인데….

그럭저럭 지냈는데 이달부터 돈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손 벌릴 데도 없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신용카드로 약간의 대출을 받을까 생각했지만 곧 맘을 고쳐 먹었다. 다음달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리 없고 무엇보다 더이상 빚을 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빚을 지느니 갖고 있어봤자 이자도 안붙는 다이아반지를 팔자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남편과는 결혼반지 파는 일을 의논할 수 없었다. 무능한 가장이 되었다고 자책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형편이 나아지면 모조다이아반지라도 몰래 사면 된다고 자위했다. 용기를 내어 반지를 들고 나갔다. 반지를 매입하는 곳의 분위기는 묘했다. 보석을 감정하는 사람들은 아주 진지했고 팔겠다고 들고나온 사람들은 무척 쑥스러워 했다. 아끼던 결혼반지가 가짜였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된 젊은 새댁도 있었다.

감정을 위해서 링에서 다이아몬드를 빼내자 가슴이 철렁했다. 보석을 빼낸 자리가 아주 크게 벌어진 상처처럼 보였다. 보석 매입상은 반지를 살 때보다 반 가까이 싼 가격을 제시했다. 그러나 마음이 이미 지쳐서인지 반지를 들고 더이상 다른 데를 찾아다닐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제시한 가격에 합의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목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내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싶었고 남편에게 무척 미안했다.

김은경(가명·서울 강서구 등촌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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