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⑨]독일인의 기록문화

  • 입력 1998년 4월 28일 20시 15분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의 한 참사관이 업무 협조를 위해 본에 위치한 경제부 담당자를 찾았다. 둘은 명함을 교환하고 자료보관실로 갔다.

자료보관실에는 각종 파일이 비치돼 있었다. 아시아난은 국가별로 분류돼 있었다. 한국관련 파일을 꺼냈을 때 참사관은 경악했다. 그동안 경제부를 찾은 한국인 방문객의 명함이 가득했다. A4용지엔 질의 답변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었다. 누가 무슨 자료를 받아갔는지도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방문사실도 이렇게 파일로 정리됩니다.”

그 담당자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독일 정부는 이 파일을 적극 활용한다. 알만한 사람을 찾아내 독일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요청하기도 한다. 독일 공무원이 한국을 방문할 때 만나볼 만한 사람도 이 파일에서 찾아낸다.

파이프오르간을 만드는 본의 수공업회사를 방문했을 때 클라이스 회장은 기자에게 “당신은 우리 회사를 찾은 1백57번째 한국인”이라며 반겨주었다. 클라이스 회장은 미리 회사파일을 뒤져 한국인방문자에 관한 자료를 읽어둔 것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방문객의 요구 사항은 물론 인상 관심사 등 특이사항을 모두 기록해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상한 일’이라는 듯이 파일을 보여줘가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기업 관계자는 대부분 우리 회사 팜플렛을 가져갑니다. 그런데 같은 회사 사람이 또 와서 똑같은 자료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라인강변의 공원에 가면 부모와 산책을 즐기는 유치원생 또래의 어린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어깨에 가방을 메고 있다. 가방엔 인형 한개와 책 한권, 메모지 필기구가 들어있는 게 보통. 인형놀이가 싫증나면 메모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쓴다.

어른이 돼도 이 습관은 그대로 남는다. 남과 대화하면서도 뭔가를 열심히 적는다. 토론거리를 정리하기도 한다.

독일 주부들은 책에서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따로 적어서 냉장고나 부엌 벽에 붙여둔다. 물건을 주문받은 가게에선 배달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정확하게 그 시간에 배달한다. 독일 사회에서 ‘잊었다’는 말은 용인되지 않는다.

〈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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