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도덕적 벼랑」에 몰린 일본

  • 입력 1998년 4월 22일 19시 46분


“부끄럽습니다. 일본이 당연히 먼저 해야 할 일을 한국이 했으니 창피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의 정계 시민단체 관계자가 참가한 가운데 21일 도쿄(東京)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의 조기해결을 촉구하는 국제포럼’에서 쓰치야 고켄(土屋公獻)전일본변호사연합회장은 “부끄럽다”는 말을 계속 되뇌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한국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키로 결정하자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이를 환영했지만 실제로는 무척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를 마냥 반길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해당국 정부도 피해여성을 외면하는데 왜 우리가 보살펴야 하느냐”는 논리가 우세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피해자인 한국과 대만정부가 지원을 하는데 가해자인 일본은 뭘 하느냐”는 부메랑의 화살을 맞게 됐다.

일본의 한 언론인은 “한국의 조치는 일본에 전향적인 자세전환을 촉구하는 것으로 일본은 도덕적으로 벼랑에 몰리게 됐다”고 해석했다. 그는 “특히 2차대전 때 미국에서 직장을 뺏긴 일본인에 대한 배상까지 받아낸 일본이 위안부문제에 눈감으려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뭐라 하겠느냐”고 말했다.

일본언론들도 “‘여성기금’을 내세워 돈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 일본에 대해 한국은 반성과 사죄 및 국가배상 등 역사적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다”며 “올 가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외교마찰을 불러올 소지도 있다”고 해석했다.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다루었다고 우익세력이 난리를 치는 일본에 ‘코페르니쿠스적 정책전환’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일본은 독일이 2차대전의 죄과를 어떻게 반성했는지 새겨볼 일이다.

권순활<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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