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헌재 金監委長/『7大 대형은행이 합병주체』

  • 입력 1998년 4월 21일 20시 06분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은 한약처방이 최선이지만 지금은 수술 외엔 처방이 없는 상태입니다. 고통은 지금부터 닥칠 겁니다. 이 상황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이 부드럽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21일 본보와 가진 2시간 여의 인터뷰를 이런 말로 맺었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어떻게 감독해나갈 생각입니까.

“금융기관들이 유상증자나 경비절감을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제시하면 경영평가위원회가 객관적으로 실천 가능성을 판단할 겁니다. 여기서 경영개선계획이 부실하거나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퇴출이나 합병이 불가피할 겁니다. 금융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정부가 합병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위원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다소 부실한 A은행과 B은행이 있는데 A은행은 외국인과 합작해 증자에 성공한 반면 B은행은 실천 가능성이 없는 증자계획만 제출했다면 시장이 A은행을 더 높이 평가한 셈입니다. 경영평가위원회가 인정할 수 없는 경영개선계획을 내놓은 B은행 경영진은 종업원과 소액주주 등 사회적인 (퇴진)압력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압력을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더구나 부실이 결정적인 C은행이 있다면 이는 통폐합 대상이 아니라 퇴출 대상이 될 겁니다.”

―은행 경영진 문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입니까.

“적절하지 못한 경영개선계획을 낸 은행 경영진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만 2월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을 갈았다면 다시 경질하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국내 금융기관간 통폐합 방식은 어떻게 됩니까.

“우량금융기관간 통폐합이나 우량기관이 부실기관을 인수하는 방법이 바람직하겠지요. 하지만 부실금융기관간 통폐합은 무의미합니다. 그런데 한국 특성상 자발적 통폐합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필요하면 유도하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대등한 1대1 합병을 상정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처럼 대등한 입장에서의 합병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합병측과 피합병측이 분명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통폐합을 주도하는 은행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국내 은행간 합병의 주체는 7대 대형은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합병의 고통이 엄청나지 않을까요.

“1+1〓2가 되는 합병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업능력은 두배 가까이로 키우되 조직은 1+1〓1.2가 되는 정도의 다운사이징이 이뤄져야 합니다. 외국 금융기관의 서울 제일은행 인수도 이같은 대대적인 감량이 전제되지 않고는 어려울 겁니다.”

―국제결제은행(BIS)기준의 자기자본비율 8%를 모든 은행에 적용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일본에서 일부 지방은행에 대해 BIS 자기자본비율 적용을 차등화하고 있지만 곧 국제적 압력을 받게 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 은행은 규율을 위해서라도 8% 기준의 일괄적용이 필요합니다.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은 작은 펀치를 자주 날려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해야지 다 봐주다가 큰 펀치를 날리려고 하면 한방에 망하게 돼 결국 감독할 수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금융 구조조정의 비용은 결국 국민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국민도 그동안 경제규모에 맞지 않게 미래의 소득을 가불(假拂)해서 산 셈입니다. 예컨대 부실기업인 한보제철소가 없었다면 그만큼 일자리도 적었을 것이고 인근의 식당이나 유흥업소도 호황을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사회 전반에 이같은 도덕적 해이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를 청소하는 것이 구조조정인 만큼 어느 정도의 국민부담이 불가피한 면도 있습니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언제 일단락될까요.

“9월이나 그 직후 1단계 조정이 마무리될 겁니다. 4월까지 경영개선계획을 받아 6월까지 평가한 뒤 개편이 이뤄질 것입니다. 상당한 수준의 개편이 가시화할 겁니다.”

―1단계에서 빅뱅(대개편)은 아니더라도 ‘스몰뱅’ 이상의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 말씀인가요.

“금감위가 아무 일도 안하면 몰라도 일을 한다면 그만한 변화도 없이 구조조정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금융개혁과 기업개혁의 순서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만….

“일부에선 은행을 먼저 정상화시킨 뒤 기업개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상여신과 부실여신을 가리지 않고 연장해주자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이를 연장해줄 경우 부실은 자꾸 늘어나는데 나중에 기업개혁이 되겠습니까. 은행개혁이란 부실여신을 청소하는 작업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금융과 기업의 동시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채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실제로 가능한 방안이 있을까요.

“모든 것을 껴안고 가려니까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을 구분해야 합니다. 악성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부실기업은 자산처분이나 파산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다만 지금은 필요한 비용을 벌지는 못하지만 앞으로는 개선될 전망이 있는 기업은 주주들과 채권금융기관이 함께 부담해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한라제지나 쌍용자동차의 매각이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경영은 건실하지만 자기자본이 부족하거나 단기차입금 비중이 높은 기업은 회사형투자신탁(뮤추얼펀드)형 구조조정기금을 통해 지원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입니다. 외국인들이 참여한 뮤추얼펀드가 특정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면 이를 믿고 주식을 사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겁니다. 경제는 동적(動的)이기 때문에 계기가 주어지면 잘 풀려나갈 것입니다.”

―외국자본이 국내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지분만큼 국내 산업자본에 대해서도 금융지배를 허용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외국계 자본이 금융자본인지 산업자본인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외국계가 산업자본일 경우 국내 산업자본의 동등한 참여를 막으면 역차별의 문제가 있겠지만 순수 금융자본일 경우에 국내 산업자본에도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은행의 주주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출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는 제동이 필요합니다.”

〈정리〓천광암·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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