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뉴질랜드 『행인이 먼저, 車는 나중에』

  • 입력 1998년 4월 20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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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3월말 휴가를 즐기기 위해 뉴질랜드를 찾은 캐나다 토론토대학 생물학연구소 직원 로즈 매리(27·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숙소가 위치한 오클랜드시 퀸 스트리트는 한마디로 ‘무단횡단 천국’이었다.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가 옆에 뻔히 보이는데도 보행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마구 길을 건넜다.

“아 참, 뉴질랜드는 관광객이 많은 나라지.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은 현지인이 아니고 외국 관광객일거야.”

매리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나 곧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관광객들은 오히려 신호를 잘 지켰다. 무단횡단하는 사람은 대부분 현지인이었다.

매리의 실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단횡단하다 경찰에 들키면 벌금을 물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현지인은“벌금은 무슨 벌금,우린 그런 것 모른다”고 대답했다.

오클랜드의 한 경찰관도 “무단횡단을 하면 35달러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지만 10년 동안 무단횡단으로 과태료를 물린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뉴질랜드는 분명 교통후진국이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세계적으로 ‘보행자 사고가 없는 나라’로 꼽힌다.

95년 기준으로 차량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2.5명. 우리나라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보행자 사망률(12.1%)도 우리나라(38.4%)보다 훨씬 낮다.

이처럼 뉴질랜드의 보행자 사망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운전자들의 ‘보행자 우선’의식과 교통안전청(LTSA)의 ‘보행자를 생각하는 교통정책’때문이다.

뉴질랜드 운전자들은 보행자가 도로에 들어서면 무단횡단 여부에 관계없이 일단 차를 세운다. 뉴질랜드에선 운전자들이 먼저 차를 세운뒤 보행자들에게 ‘건너가라’는 손짓을 하는 것을 자주 볼수 있다.

교통안전청의 보행자 우선 정책은 횡단보도 발전단계에 잘 나타나 있다.

1단계는 ‘얼룩무늬 횡단보도(Zebra Crossing)’설치. 80년대 초 시간당 3백대 이상 차량이 통행하는 곳에 얼룩무늬 횡단보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2단계는 ‘횡단거리 줄이기(Road Narrow)’. 횡단보도 양쪽의 인도를 차로 쪽으로 확장, 보행자가 건너야 하는 거리를 줄였다. 횡단보도가 있는 곳에선 도로폭이 좁아져 운전자들이 더욱 조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이어 80년대 말에는 횡단보도 중앙에 ‘보행자 섬(Pedestrian Island)’을 만들었다. 길을 건너다 신호가 바뀌면 도로 중간에서 안전하게 다음 신호를 기다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 보행자 섬은 차량들이 보행자를 덮치지 못하도록 도로표면보다 훨씬 높게 만들었다.

〈오클랜드〓이호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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