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건주의 감사 안된다

동아일보 입력 1998-04-05 19:26수정 2009-09-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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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국가최고 사정기관이다. 비록 대통령 직속기구로 되어 있으나 직무에 관한 한 독립된 지위를 갖는다. 주어진 권한과 책임도 막중하다. 국가 세입 세출의 결산검사와 함께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한다. 감사원이 제 역할과 기능을 다해주면 정부 각 기관의 방만한 예산집행이나 비효율은 생겨날 수 없다.

감사원의 이같은 위상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철 특별감사 중간결과는 다분히 한건주의의 유혹에 빠져들었으며 정부정책 방향이 급선회하자 입장을 바꾸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외환위기 특감, 개인휴대통신(PCS) 특감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했다고 할 수 없다.

경부고속철 특감 중간보고는 ‘고속철이 경제성 채산성이 없고 재원조달도 어려워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당시 감사원의 결론인 ‘전면 재검토’는 사업비 절감, 구간별 단계별 건설, 재정지원확충 방안 등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며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건설 자체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는 주문이었다. 지금이라도 건설을 포기하는 것이 경제논리에 맞는다는 견해였다고 할 수 있다.

감사원이 고속철 특감에서 초점을 맞춘 부분은 사업계획의 주먹구구식 숫자 짜맞추기였다. 그리고 총사업비 산출이 엉터리였음을 밝혀내고 그 결과 경제성과 수익성 계산에도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백지화쪽의 전면 재검토 건의는 신중을 기했다고 할 수 없다. 우선 사업을 중단하게 되면 이미 투입된 2조3천억원은 물거품이 된다. 사들인 부지를 되팔고 완공된 구조물을 원상회복하는 데 드는 돈도 막대하다. 당초 도입키로 한 23억달러의 해외차관은 취소되고 이미 들여온 8억달러는 일시불로 갚아야 한다. 계약파기에 따른 국가신인도 추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고속철의 차량공급은 프랑스 알스톰, 설계는 시스트라, 감리는 SEEE 및 독일 DEC, 사업관리는 미국의 벡텔이 맡고 있다. 사업을 중단하면 해약에 따른 손실액을 물어줘야 한다.

특감의 중간 감사보고가 신랄했던 것은 다분히 한건주의의 소산이다. 그리고 최종확정한 감사결과처분요구서에서 뚜렷한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대안을 내놓은 것은 정부정책의 눈치보기라는 비판의 소지를 남겼다. 정부가 실업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사회간접자본투자 확충의지를 강력히 천명하자 건설을 전제로 한 전면 재검토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고속철 등 각종 국책사업에 대한 감사원 연례 정기감사가 철저했다면 지금과 같은 부실시비는 사전에 차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전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만 과감한 감사관행은 이제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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