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곳에 가고싶다]경주 유적들 놀람-감탄소리 절로

  • 입력 1998년 4월 2일 0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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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직장동료들과 함께 찾은 경주남산. 골짜기 굽이굽이 널려 있는 불상 절 탑들 앞에서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국사나 석굴암정도밖에 경주유적을 몰랐던 나는 경주남산에 와서야 비로소 신라와 경주를 알게 됐다.

그날 답사는 경애왕릉과 삼릉에서 왕릉의 도굴역사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골짜기마다 만나는 마애관음입상 아미타삼존불 석가삼존불 석불좌상보가 천년의 시간을 건너와 눈앞에 이어졌다. 신기했던 것은 힘찬 기상이 넘치던 통일신라 초기 불상들이 후기로 접어들면서 단아함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 사회적인 변화가 이렇게 예술에도 투영되는가 싶었다.

산행을 하며 불상과 전설을 계속 보고 듣다보니 좀 커다랗다 싶은 바위만 보면 저 돌에도 무슨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까 찬찬히 뜯어보게 되었다.

금오봉 정상을 지나면서 만난 산불의 흔적을 잊을 수 없다. 늙은 농부가 논두렁을 태우면서 불길이 이곳까지 번졌다는 것. 시커멓게 숯이 돼버린 소나무숲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당시 산불로 남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지정 신청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안내인의 말에 실망이 컸다. 다행스럽고도 신기한 것은 대연화대좌 삼층탑보 삼륜대좌불보 등 인근 유적지는 산불이 피해갔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보살핌을 입은 것일까? 은적골을 거쳐 고위봉을 넘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머어마했다는 천룡사지를 지나 산채비빔밥을 하는 식당에 들렀다. 다리의 피곤을 풀며 안주로 들이켠 막걸리 한잔이 지금도 혀끝에 돈다. 올해도 경주남산을 돌아볼 기회가 생길까. 그때 그 막걸리 맛은 여전할까.

김상규(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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