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 선비론(23)]신채호의 「아나키즘사상」

  • 입력 1998년 3월 26일 20시 33분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强盜)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 파괴의 길로 매진해야 하리라.’

한국독립운동사에 찬연히 빛나는 불후의 명문(名文) ‘조선혁명선언’(1923년 단재 신채호).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단재의 일대 사상적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글이다.

조국독립과 민중 혁명을 위해 일생을 바친 단재 신채호. 그 처절하고도 치열했던 혁명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다름아닌 아나키즘 사상이다.

1925년 46세 이후 그는 완전한 아나키스트로 변신했다. 독립군 10만을 양성하는 것보다 한발의 폭탄을 던지는 것이 더 낫고 1억장의 신문 잡지보다 한번의 무력 폭동이 더 낫다는 신념의 발로였다.

단재는 왜 아나키스트가 된 것일까.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한 그에게 안창호의 준비론이나 이승만의 외교론은 독립을 쟁취하기에는 너무나도 유약했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회유적인 문화정치에 타협하는 민족운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조선의 특권 계급에 민족의 독립을 맡긴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단재에게 있어 일체의 권력, 일체의 기득권을 딛고 민족을 해방하는 유일한 길은 폭력 민중혁명뿐이었다.

단재의 아나키즘은 조선 독립이라는 제한된 민족주의의 틀을 넘어서고 있기에 더욱 찬란하다. 한나라 약소 민족의 독립이라는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를 넘어 전세계적 반(反)제국주의 투쟁을 지향했던 단재 신채호.

그는 단순한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아니키즘의 원래 이념처럼 진정한 자유주의자 공동체주의자였던 것이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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