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金대통령의 「父子일기」

  • 입력 1998년 3월 20일 20시 08분


“네가 태어난 그 달에 레닌은… 혁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인도에서도…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간디)에게 고무되어….” 독립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의 한 대목이다.

네루는 영국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벌이다 투옥되자 10대의 딸 인디라에게 옥중에서 편지를 보내 세계역사를 가르쳤고 그 편지들이 훌륭한 역사책으로 만들어졌다. 아버지로서도 역사가로서도 그는 위대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3남 홍걸(弘傑)씨의 ‘부자(父子)일기’가 월간 ‘신동아’ 4월호에 소개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김대통령이 가택연금돼 있던 79년에 고교 1년생 홍걸씨의 일기를 읽고 ‘독후감’을 붙인 것이다.

김대통령은 공부하는 방법에서부터 종교적 생활방식, 명작소설이나 세계역사에 대한 생각까지를 ‘독후감’에 폭넓게 적었다. 김대통령의 또다른 면모를 엿보게 한다.

▼‘영어공부는 단어가 70%, 문법이 30%라고 하겠다. 단어는 단어장을 만들어서 되풀이 암기할 것’‘인내심과 끈기는 인생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큰 열쇠다’ ‘일본어의 초보책을 사서 조금씩 배워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와줄 수 있다’ ‘뉘우치지 않는 자, 교만한 자를 하느님은 용서하시지 않는다’ ‘스포츠에 시간을 과도히 소비한 것같다. 인생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아 아버지들이 주눅들고 있다. 김대통령의 박식함과 열의는 보통의 아버지들을 더욱 기죽게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기 때문에 아버지를 존경하거나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사랑을 베풀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이낙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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