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25시]최화경/「농구사랑」팔순할머니의 호소문

  • 입력 1998년 3월 17일 20시 02분


‘어제까지 농구에 모든 것을 걸었던 선수와 지도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밀려 13개 실업팀 중 절반이 넘는 7개가 해체됐고 남은 팀들의 운명도 백척간두에 서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농구인들도 여자농구 살리기에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그동안 여자농구가 쌓아올린 그 수많은 영광의 순간들을 지켜내야 한다….’

8순을 바라보는 윤덕주 한국어머니농구회 회장이 17일 호소문을 냈다. ‘여자농구단 해체 상황을 보며’라는 제목의 이 호소문은 구구절절 노(老)농구인의 여자농구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일제 때 숙명고녀에서 농구선수로 뛰었고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으로 여자농구를 이끌어온 한국농구의 산 증인. 선수들로부터 “회장님”이라는 딱딱한 칭호대신 “할머니”로 불리는 그는 지금 부회장직을 물러나 와병중. 그러나 스러져가는 여자농구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는 붓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최근 두툼한 대학노트 한권을 소포로 받았다. 발신인은 ‘여사모(여자농구 사랑모임)’. 앞 부분엔 회원 3백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고 내용은 SK증권 농구단 해체에 관한 규탄이 대부분.

WKBL은 24일 해체된 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남은 팀이 드래프트하기로 했다. 더이상의 해체를 막고 선수들을 안정시켜 SK증권의 돌연한 해체로 연기된 여자프로농구 출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다.

이 계획이 알려지자 대한농구협회가 ‘딴죽’을 걸고 나섰다. WKBL은 아직 공인된 단체가 아닌 만큼 대한농구협회가 드래프트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협회는 여자실업팀이 줄줄이 문을 닫는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모기업에 해체의 재고를 요청하거나 인수를 권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적이 있었던가.

지금은 “할머니”의 호소처럼 여자농구에 대한 사랑이 절실한 때다.

〈최화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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