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요구에 한국처럼 순응하는 나라도 없다고 한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후보는 ‘재협상’을 주장했다가 한나라당의 맹공을 받았다. 조순(趙淳)총재는 캉드쉬 IMF총재와 통화, 캉드쉬도 “재협상요구는 금융공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등으로 경고했다며 김후보를 몰아세웠다. 국민회의는 조총재가 캉드쉬 발언을 ‘뻥튀기 조작’했다고 비난하면서도 ‘재협상’을 ‘추가협상’으로 수정했다. 감표우려 때문이었다.
▼그런 조총재가 IMF체제 1백일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IMF조건 재협의 특위’를 국회에 설치하자고 여당측에 제안했다. IMF가 요구하는 고금리와 초긴축정책을 완화해야 하며 정부는 IMF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재협의’와 ‘재협상’이 어떻게 다른지 몰라도 명망있는 경제학자 출신으로 한은총재까지 지낸 조총재의 중대한 태도변화다.
▼표변은 집권측에도 많다. 예컨대 부패방지법 제정은 국민회의의 10대 공약이었으나 새 정부 1백대 과제에도 끼지 못했다. 선거 때면 표(票)밖에 보이지 않다가 선거가 끝나면 이것저것 보이기 시작하는가. 그래서 “선거전(戰)에서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이긴다. 그러나 그 승리는 항상 상대편의 것이다”는 존슨 전 미국대통령의 묘한 역설(逆說)이 나왔는가.
이낙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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