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정수/끊임없이 독서하는 대통령

입력 1998-03-08 20:03수정 2009-09-25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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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세계 제2차 대전 막바지에 루스벨트 대통령을 승계하였을 때 미국 국민은 물론 연합군 수뇌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훌륭한 솜씨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세계 문제 해결에 큰 역량을 발휘하였다.

호사가들은 그의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샅샅이 알아보았다. 그 결과 그는 14세때 자기 고장 도서관의 책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다 읽었음이 판명되었다.

▼ 세계지도자 「독서광」 많아

이 사실은 그가 보인 비범한 능력의 한 원천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제퍼슨은 장서가 많기로 역대 대통령중 으뜸이며 “나는 하루도 책 없이는 못 산다”고 하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현직 클린턴 대통령도 책을 많이 사고 쉴새없이 읽기로 유명하다. 그의 달변과 뛰어난 사리 판단력, 통찰력은 독서에서 나온다는 데 이론이 없을 정도이다.

역대 세계 정상 지도자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일화는 많다.

일찍이 세종대왕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탓에 안질이 나서 초정약수터까지 가서 눈을 씻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책을 읽은 독서광이었다.

처칠 총리도 책을 남달리 사랑했으며 책을 읽을 시간이 정 없으면 옆에 두고 만져보기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전후 복구에 공이 컸던 사토 에이사쿠 총리도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물론 독서는 더욱 훌륭하고 성공적인 지도자가 되기에 필요한 힘의 원천이 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천만다행하게도 우리나라가 드디어 2만권에 가까운 장서를 지니고 끊임없이 독서를 하는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모시게 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의 29회에 걸친 옥중 서신에는 역사 철학 경제 정치 문학 등 각 방면에 걸친 수백권의 책들을 차입해 달라는 내용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그 뒤의 바쁜 정치인 생활에서도 꾸준히 책을 읽고 동서고금의 사상과 지혜를 널리 섭렵하여 교양과 지식을 쌓고 통찰력을 길렀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2개월 동안 숨막히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30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실만으로도 김대통령은 우리가 목메이게 갈구하던 격조높은 문치(文治)대통령이 되기에 충분하다.

폭력과 금력과 힘의 논리만 판치던 우리의 정치 풍토에 바야흐로 문화 선진 대국으로의 새 지평이 열릴 것으로 기대해 마지않는다.

독서의 힘으로 무장한 문치대통령. 얼마나 바라던 새 시대의 지도자상인가.

이제 독서로 갈고 닦은 수준높은 대통령의 문화적 소양이 우리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문화 선진국의 꿈을 이루어 주길 바란다.

▼ 人治-官治 아닌 文治 기대

그러나 그처럼 책을 사랑하고 책을 많이 읽는 대통령이 선출된 이 마당에 출판계가 책을 못낼 정도의 큰 위기를 맞고 있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경제 공황의 여파이겠지만 문화 대국의 꿈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기막힐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김대통령에게 출판 위기라는 짐이 하나 더 얹히게 되었으니 보기에도 민망스럽기만 하다.

그 짐을 떠넘긴 사람은 따로 있는데도 현실은 어쩔 수 없이 김대통령의 각별한 배려를 바랄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문화를 살리는 일에는 다소 무리를 한다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을 터이니 문치대통령의 결단으로 출판 위기 극복의 실마리가 풀리기를 갈망한다.

서정수(한양대교수·국어정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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