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사회비판극 「김사장을…」연출한 엄인희씨

  • 입력 1998년 3월 3일 07시 39분


“이봐 거기 두 사람 시끄러우니까 섹스는 나가서 해.”

5일부터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소극장에서 막 올리는 연극 ‘김사장을 흔들지 말란 말이야’의 희곡과 연출을 맡은 엄인희(43). 그가 공연연습장 간이 침대위에서 장난치며 떠드는 아들 종호(5) 여배우 송미월에게 대뜸 던지는 한마디.

서울예전 연극과를 졸업, 81년 일간지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된 후 노동판에 뛰어든 경험 때문일까. 그의 직설적인 어투와 화장기 없는 장난스러운 표정에는 사회의 온갖 억압을 깨뜨리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리얼리즘에 심취, 한국의 브레히트와 다리오 포를 꿈꿔온 그다.

‘김사장을…’은 눈물젖은 웃음을 자아내는 사회비판극. 국제통화기금(IMF)풍파속에 대기업에 납품한 중소기업사장이 대금을 받기위해 고층호텔에서 자살극을 벌이는 내용. 활극의 형식을 띠면서 곳곳에 폭소탄을 설치해 뒀다. 김사장이 죽지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장면, 또 대금을 받아낸뒤 팬티 바람에 ‘랄랄라’춤을 추는 대목….

“현재의 비극적인 상황을 그대로 묘사할 경우 고통스러운 현실에 처한 관객들에게 괴로움만 줄 것 같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의 칼날은 곳곳에서 번득인다.

“변호사는 돈있으면 사고, 묵비권이야 안때리면 행사하지.” 피의자의 권리를 담은 미란다원칙을 들려주는 경찰에게 김사장이 내뱉는 대사.

엄인희는 2년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중소기업사장의 자살 보도를 접하며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 그가 컴퓨터에 ‘슬픈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장하고 있는 20여개의 희곡도 대부분 일간지 사회면에서 얻은 정보를 참고로 했다.

이 중 ‘심장병 사나이’‘세할머니’등이 거의 완성단계.

‘심장병 사나이’는 심장병때문에 성행위를 못하는 남자가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포르노극장에 들어갔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내용. ‘세할머니’는 에로물을 소제로 각각 작가 배우 연출가로 활동했던 세 여자가 노년에 관악산 기슭에서 노인을 상대로 벌이는 윤락행위의 처연함을 담았다고 한다.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생과부 위자료소송’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 그의 작품들은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은폐되어온 성(性)적 담론을 직설화법으로 펼친다.

“우리사회의 여성 문제는 권력과 성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나옵니다. 여자들이 자신에 대한 사회의 성적 억압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일상생활속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죠.”

주부우울증 극복을 위해 집에서 디스코를 즐겨 춘다는 엄인희. ‘너무 철없지 않으냐’는 배우들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않고 60년대 팝송 ‘프라우드 메리’의 노래와 율동을 선보이는 모습에서 그의 연극이 가진 생명력의 한 단면이 느껴졌다. 02―762―0010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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