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 선비론/惠岡 최한기]동서양 융합꿈꾼 氣철학자

  • 입력 1998년 2월 12일 19시 34분


19세기초 실학을 시대사조로 확립한 정약용(丁若鏞)이 한밤중에 일어나 등불을 켜고 근대의 새벽을 기다렸다면 19세기 중후반 서양과학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독자적인 기(氣)철학을 정립한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1803∼77)는 모두 잠들어 있는 신새벽의 어둠 속에 횃불을 밝혀들고 대문을 나서 근대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곧 정약용이 경학의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철학을 구축한데 반해 최한기는 유교경전에 구속받지 않는 탈(脫)경학적 자율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최한기는 조선후기 실학파의 마지막 인물이자 근대 개화사상으로 한걸음 나아갔던, 그 시대의 가장 앞선 진보적 지성인이었다. 그는 경기 개성에 뿌리를 두고 주로 서울에서 살았다. 집안이 유복하여 당시 중국에서 나온 서양과학과 세계 각국의 문물서를 모두 구입해 읽었으니 그의 시야는 일찍부터 세계로 열려있었던 셈이다. 32세 때 친우 김정호(金正浩)에게 판각을 맡겨 ‘만국경위지구도(萬國經緯地球圖)’를 간행할 만큼 세계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열려있었다. 선배 실학자인 이규경(李圭景)은 최한기의 학문을 높이 평가하고 경학 및 역사 예학 천문학 수학에 관해 많은 저술이 있음을 소개하였다. 그의 저술이 1천권이나 된다는데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직 1백여권뿐이다. 그의 탁월한 학문과 폭넓은 식견이 알려지자 당시의 여러 재상들은 그를 조정에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 벼슬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신미양요로 강화도가 미국함대에 침략당하자 친분이 있던 유수(留守)의 자문요청에 조언한 바 있다. 최한기의 기철학은 경험적 인식을 중시하고 우주와 사회의 운동 변화질서를 새롭게 해석한 창의적 이론이다. 그는 34세 때 ‘신기통(神氣通)’과 ‘추측록(推測錄)’을 저술하여 기철학의 이론과 방법의 기본틀을 체계화시켰다. 그는 이 두 책을 기측체의(氣測體義)로 묶어 중국에서 간행하였으니 당시 그의 촉각은 폐쇄된 국내 무대를 멀리 벗어나 있었다. 이어 50대엔 서양과학과 통합된 기철학을 더욱 구체화한 ‘기학(氣學)’과 기철학방법을 인간계발과 인사관리에 응용한 ‘인정(人政)’을 저술, 기철학의 3부작을 완성했다. 최한기의 기철학은 성리학적 음양오행의 기개념을 극복하고 서양과학의 세계관을 수용하여 재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동양적 세계관으로 제시된 것이다. 초기 개화사상에서 주창하던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이상을 구현한 선구적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최한기의 기철학체계 대강을 보면 그는 우선 만물을 변화시키는 기를 신기(神氣)라 한다. 그리고 우주의 신기가 만물을 생성변화시키는 운동을 운화(運化), 인간의 신기가 경험 추리하는 활동을 추측(推測)이라 한다. 운화는 ‘활·동·운·화(活動運化)’의 4가지 양상과 개인 사회 우주의 3단계가 서로 작용하며 추측은 인간 사물 우주 사이의 단절을 통(通)하게 한다. 따라서 우주와 인간은 동일한 신기에서 출발하여 운화 추측의 과정을 거쳐 서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최한기의 기철학은 자연과학과 인간의 문제를 두 축으로 삼고 있다. 특히 사회의 운화 질서를 기학(氣學)의 중추로 파악하며 사회적 인간관리의 방법으로 인간을 헤아리고 가르치고 선발하며 활용하는 4단계를 제시한다. 또한 천하의 인민을 통합하여 도를 이루는 인도(人道)의 강령으로 사람을 섬기고 부리고 사귀고 접대하는 4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최한기는 서양과학기술의 다양한 영역에서 최신의 지식을 섭취하고 저술을 펴낸 이 시대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청년시절 서양 농사기술과 농기계에 관한 저술을 통해 실용적 관심을 보였으며 지구자전설과 공전설을 수용하며 뉴턴의 만유인력 등을 받아들이고 수학적 계산법을 저술했다. 또한 기개념에 근거하여 온도계 습도계 기압계 등 계측기구와 양수기 증기기관 전기 등 서양과학의 실용적 도구들을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세계지리 관련 지식을 소개하고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홉슨의 의학서에 근거, 뇌신경과 혈액순환의 해부학적 구조 등 서양의학을 담은 책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바꾸는’ 변혁의 시대로 규정한 그는 “차라리 옛 것을 버릴지언정 지금을 버릴 수는 없다”하여 진보정신을 표방하고 과학과 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역사가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아가 그는 지역의 범위나 사물의 종류 등 작은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대동(大同)’을 이상의 원리로 제시했다. 작은 차이에 따른 모든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대통합하는 대동의 이상세계를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대동의 세계에서는 국가의 관습을 넘어서고 동양 서양의 차이를 해소함으로써 세계가 통합된 하나의 질서를 이루게 된다고 보았다. 이 대동세계를 통해 세계의 모든 이념과 종교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해소하고 일치와 조화를 이룬 평화의 세계를 대망하였던 것이다.최한기는 70세 때 고종의 시종(侍從)이 된 큰아들로 인해 정3품인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지위에 올랐고 세상을 떠난 후엔 그의 높은 학덕으로 인해 대사헌(大司憲)을 추증받았다. 그러나 그의 학문은 계승자를 얻지 못한 채 한동안 세상에서 잊혀지고 말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다시 발굴되고 연구되기 시작하여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금장태(서울대교수·종교학) ▼약력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성균관대학원 박사학위 △성균관대 교수 역임 △저서 '한국실학사상 연구' '한국근대사상의 도전' '유학사상의 이해'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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