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이나 들소떼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뛰는 방향으로 뛴다.
국제금융가에도 이런 일이 잦다.
지난해 8월과 10월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가 갑자기 급락했다.
종금사의 단기채무 상환능력, 채무비율이 높은 재벌의 경영난 가능성 등 한국경제와 관련한 악재(惡材)는 대부분 드러나 있어 특별히 새로운 뉴스도 없었다. 그런데도 원화가치는 급락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태국이나 멕시코, 작년 10월 세계증시가 동반폭락한 ‘검은 목요일’의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왜 걷잡을 수 없는 폭락이 하필 ‘그날’ 일어났는지 명쾌한 이유가 없다.경제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무리효과(Herd Effect)’라고 부른다. 동물이 무리지어 움직이듯 투자가들도 흐름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원화가치가 떨어질 요인이 쌓였다 해도 투자자들이 정확한 하락시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저명한 신용평가회사 △조지 소로스와 같은 세계적 투자자 △거대 펀드를 움직이는 은행 등 금융시장의 리더들이 매도신호를보내면개미군단은“이때구나”하며 너나 없이 ‘팔자’ 주문을 낸다. 사자떼가 뛰면 밀림의동물들이덩달아뛰는 꼴이다.
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치유한 경제학자 존 케인스는 증시에서 나타나는 이같은 현상을 ‘사진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1백명의 사진을 보고 최고 미녀를 뽑는 대회가 있다고 하자. 심사위원들의 평균적 선택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을 받는다. 이때 심사위원들은 스스로의 취향이 아니라 남들의 기호에 맞춰 사진을 선택한다. 결국 통념상 미인의 기준에 가장 적합한 미녀가 선정된다.”
〈허승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