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의 환차손 횡포

  • 입력 1998년 1월 16일 20시 13분


거래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들의 횡포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특히 최근 환율이 급등락하는 틈을 타 대기업이 환차손(換差損)은 중소기업에 떠넘기고 환차익(換差益)은 가로채거나 나눠먹자는 식의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한다. 자금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은 대기업들이 해도 너무하다. 수출물품 선적서류를 받은 재벌그룹 종합상사가 인수증 교부를 미뤄 중소기업은 대금을 제때에 받을 수가 없다. 수출대금 계산은 대기업에 유리한 날짜를 잡아 환율을 적용하는가 하면 인수증 발급일을 멋대로 정해 환차손을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환차익은 자기들이 먹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환차익이 발생하면 나눠먹자고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대기업도 있다. 도대체 이런 불공정거래가 어디 있는가. 어디 그뿐인가.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대기업들은 납품대금 어음 결제기간을 종전보다 2,3개월씩 늘려 중소기업 자금사정이 최악이다. 반대로 물건을 팔 때는 철저히 담보를 요구해 이중으로 고통을 주고 있다. 금융권은 재벌그룹 부도를 막느라 수천억원씩 지원하고 그나마 신용이 나은 대기업 위주로 대출하니 중소기업은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극도의 금융경색에다 대기업 중소기업간의 거래시스템까지 마비되어 중소업체는 살 길이 막연하다. 차기정부가 재벌개혁을 강도 높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작년말 재벌들은 금융시장에서 돈을 싹쓸이해 가뜩이나 어려운 자금시장을 더욱 악화시켜 비난을 받았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도 그들은 자체 외화는 금고에 쌓아두고 달러 사재기에 나서면서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남은 다 죽어도 나만 살겠다는 이기주의와 우월적인 지위를 악용해 중소기업 숨통을 죄는 재벌 행태는 바로잡아야 한다. 중소기업은 국가경제의 허리이자 저변이다. 지난해 수출이 극히 저조했어도 중소기업의 수출은 두자릿수로 증가했다. 이제 중소 부품업체가 도산하면 관련 대기업도 가동을 멈춰야 할 정도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관계는 중요해졌다. 대기업들은 자기 몫 챙기기에만 열중하지 말고 중소기업을 배려, 함께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대기업들의 이런 횡포는 중소기업과의 수평적 협력관계를 다짐한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과 4대그룹 총수간의 재벌개혁 합의를 무색케 한다. 합의만 백번 해봐야 소용이 없다. 실천이 중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환차손 떠넘기기나 납품대금 늑장 지급같은 대기업 횡포를 엄중 단속하기 바란다. 금융시스템의 안정 못지않게 무너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시스템도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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