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관/착잡한 청와대

입력 1998-01-06 07:50수정 2009-09-2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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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와대 관계자들의 표정에는 짙은 그늘이 져있다. 권부(權府)에서 일하며 결과적으로 ‘경제를 망친 정권’의 조역을 해왔다는 자괴감에다 ‘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그 1차적 원인이다. 그러나 처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 못지않게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대중(金大中·DJ)차기대통령 진영,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의 활동을 지켜보며 더욱 당혹감과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한 분위기다. 인수위의 최근 행태가 92년 대선 직후의 상황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인수위 참여인사들이 영향력을 과시하듯 설익은 개혁프로그램을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제시한 결과, 수많은 개혁과제가 ‘말잔치’로 끝난 경험을 청와대 관계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 3당합당의 부산물로 이질적 세력이 모여 집권함으로써 ‘개혁주도세력’이 없었던 92년이나 여러갈래의 세력이 연합한 지금의 차기대통령 진영의 상황도 닮은꼴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6공때부터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그래도 92년 대선직후에는 당선자측이 청와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다”며 현정권의 ‘실정(失政)비리 캐기’에 나서는 듯한 인수위의 태도를 지적했다. 요는 선후의 문제라는 것이다. 헌정사상 50년의 첫 정권교체인 데다 다수당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우선 치밀하고 정교한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실패의 경험이라도 배우고 말을 아끼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고위관계자 역시 “우리는 할 말이 없다”면서도 “인수위측의 요즘 태도를 보면 국정운영의 청사진부재를 입증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마저 든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더욱 걱정하는 것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준비된 대통령’인 DJ 혼자서만 앞서 뛰는 국정운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준비된 참모’도 ‘준비된 주도세력’도 보이지 않는다는 꼬집음에 다름 아니다. 이동관(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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