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새대통령에 바란다]민병욱/혼자 뛰어선 안된다

  • 입력 1997년 12월 24일 19시 41분


포장지는 화려하다. 그러나 그 내용물은 만지기가 겁이 난다. 성탄일 아침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가 받을 「선물」이 그럴 것 같다. 겉에는 아마 「쾌거, 헌정사상 첫 명예로운 정권교체」라고 써 있을 것이다. 그냥 뜯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흐뭇한 찬사다. 문제는 속이다. 화려한 포장지 안에는 썩어 터진 나라가 들어 있다. 당장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살 길이 없는 경제 환부(환부)가 큰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벌써부터 국제통화기금(IMF)고통에 내몰린 국민의 신음도 가득 찼다. 김당선자로서는 이런 선물을 받으려고 40여년 정치세월을 인고(忍苦)하며 보냈는지 분통이 터질 일일지 모른다. ▼「준비된 대통령」기대감▼ 그러나 김당선자에게 이것은 예고된 업(業)이다. 또 그는 이런 상황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 대선전 마지막 TV토론에서 김당선자는 『지금처럼 나라가 어려울 때 나를 쓰려고 예비한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엊그제 정부의 보고를 받고나서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사실 미처 몰랐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을 「준비된 대통령」이라 강조하고 국민이 그 말을 믿어 대사(大事)를 위임한 사실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주장처럼 「준비해온 대통령」으로서 빈틈없이 국가위기를 추슬러 나가야만 한다. 김당선자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제쳐두고 직접 외환위기 극복작전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외국의 투자자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IMF협약 이행을 거듭거듭 다짐하고 대선공약을 서둘러 수정해 나가는 것도 잘하는 일이다. 외국 돈의 긴급수혈을 통해 무너지는 경제부터 살려놓아야만 나라와 국민이 산다는 것은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투자해도 된다는 믿음을 주려면 그러나 말만으로는 안된다. 눈에 보이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과감하고 신속하게 법과 제도를 정비하면서 경제개혁의 첫 단추를 채워야 한다. 그를 위한 인력의 재배치도 시급하다. 선거패배에 따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야당들도 쓰다듬어 이런 가시적 조치가 시급하게 나올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정책 하나하나 신중히▼ 그런 면에서 최근 일련의 경제 챙기기 작업이 모두 김당선자와 국민회의에서만 나오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 모두의 힘과 뜻을 모아야 하며 바로 그런 작업을 하는 곳이 국회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국민들은 김당선자가 밤잠까지 설치며, 대선때보다 더 열심히 국난극복에 앞장서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독주(獨走)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고있다. 김당선자의 구상과 행보는 이제 야당총재나 한 개인의 생각이 될 수 없으며 특히 그의 구상은 국회를 통해 검증받아 국민에게 제시돼야 옳다. 김당선자가 『외환위기가 심각해 내일 파산할지, 모레 파산할지 모른다』고 털어놓은 다음날 환율은 치솟았고 주가는 폭락했다. 어제 김당선자가 『이제 외환위기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하자 환율시장에는 미세하나마 회복 기미가 감돌았다. 김당선자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즉시 시장에 변화를 몰고오는 것도 그대로 지나쳐서는 안된다. 국민에게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용어의 선택엔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김당선자에게 내년2월 취임때까지 남은 두달은 나라가 다시 일어서느냐, 주저앉느냐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국민을 통합해 위기를 극복하려면 혼자 뛰어서는 안된다. 민병욱(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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