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승호/한국 금융위기의 본질

  • 입력 1997년 12월 13일 20시 42분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려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있다. 우리가 설득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표적이 명확치 않으면 잘못된 조치를 취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된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것은 국제자금시장의 전주(錢主)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에 대한 신용공여를 결정하는 홍콩주재 서방 증권신탁회사의 투자분석가 30여명. 이들이 한국의 나쁜 상황전개를 예상하고 자금공급을 끊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악화된 것도 우리가 이들에게「원화절상의기대」를심어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외국언론의 비우호적 보도나 서방의 음모 탓이 아니다. 이들이 한국에 대해 낙관적인 보고서를 쓸 수 있도록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야 한다. 우리의 처방은 당연히 이들을 겨냥한 것이어야 한다. 냉혹한 이코노미스트인 이들이 볼 때 예금인출 자제, 코묻은 달러 모으기, 대기업의 자금싹쓸이 자제호소, 수출기업에 달러 내놓기호소 등 「경제문제를 사회운동으로 풀려는」 시도들은 한마디로 웃기는 처방이다. 국민통합과 애국심 측면에서는 가상할지 몰라도 국제무대에서는 문제해결능력 자체를 의심받을 수 있다. 이들은 한국정부의 말에도 관심이 없다. 오직 외환보유고, 종금사폐쇄조치, IMF구제금융결정, 환율변동폭확대 등 「하드팩트」로만 판단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가 취하고 있는 조치는 종금사의 여신회수중단 자율결의, 부실종금사에 대한 은행 콜자금지원 결의, 한은 자금방출 등 비개혁적 조치였다. 또 △보유외환부족 노출 △이자율인상 불가론 △정부의 위기관리능력 부재 △국수주의적 사회분위기 등 「거꾸로 가는 것」들뿐이었다. 인도네시아는 10월부터 2백30억달러의 IMF구제프로그램이 시작됐지만 과감한 개혁조치를 회피하는 바람에 국제투자가들이 외면, 현재 파국위기에 몰려있다.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금융 및 재벌개혁, 은행보호, IMF약속존중, 국제기준수용 등의 의지를 「실천」을 통해 입증하고 일본이 약속한 1백억달러 브리지론(임시변통)을 당겨쓰며 미국의 강력한 지원의지를 확보해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들을 설득하는데 배짱이나 자존심은 무용지물이다. 이들이 평가하고 신뢰하는 시장안정 시그널이 필요할 뿐이다. 허승호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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